오늘은 엄마와 관련된 몇 가지 정리를 하러 아버지와 종일 이곳저곳을 들렀다. 준비한 서류는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진단서... 엄마가 더는 곁에 없다는 걸 진하게 상기시켜 주는 서류들.
일을 끝내고 엄마가 자주 가던 동네 시장 국숫집에 갔다. 아버지는 주인 할머니에게 엄마 이름을 몇 번 들먹이고,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픈 사람 있잖아요, 많이 아픈 사람!"이라고 큰 소리를 낸다. 나는 아버지의 저런 속없는 말이 참 싫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아픈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도 싫고, 이름 모를 남한테조차 괜히 값싼 위로라도 얻어보려는 시늉이 밉다. 아버지는 시장 반찬 가게에서도 주인에게 "마누라가 죽어가지고 내가 반찬을 사러 다니네!"라고 말하고, 엄마가 묻힌 곳에 가서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 "내 팔자에 마누라가 먼저 죽어가지고 꽃을 사가지고 와야 되네!"라고 말한다. 울고 있던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지를 본다. 물론 그게 아버지 당신의 방식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내가 밤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훌쩍이는 것처럼, 아버지도 남들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를 손수건 삼아 눈물을 닦아내고 있겠지.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그런 식으로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수학공식처럼 내 안에 새겨 넣고 싶지 않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잘 아는 분이 하는 방앗간 앞을 지나쳤다. 주인아저씨가 오래전 봤을 때와 그대로라서 나는 정말 놀랐고, 국숫집도, 떡집도, 추워지는 날씨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화빵 포장마차도, 모든 것이 너무나 그대로인데 왜 엄마만 없는 건지 허탈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쓴 육아일기 노트를 열심히 찾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