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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10. 2024

2024년 10월 10일

아침.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 달 넘게 손대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하려고 점심 이후 미용실 예약을 잡아놨는데, 기차에서 내려 걷고 역사 내 식당을 기웃거리며 점심 메뉴를 고르느라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졌다. 기를 미루고 미뤄왔던 사랑니를 며칠 전에 두 개나 뽑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 없기 때문. 결국 역사 옆에 붙은 스타벅스에서 급한 대로 샌드위치-샌드위치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아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아이스 민트차를 주문했다.  접시에 예쁘게 담긴 샌드위치가 나왔고, 포크와 나이프도 준비되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샌드위치를 썰다가 <흑백요리사> 안성재 셰프의 정갈한 칼질을 떠올리며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했지만, 칼이 엇나가 금세 빵과 속이 분리되었다. 속에 든 계란, 채소가 보였 순간 "저는 채소의 익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든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같은 안셰프의 유행어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미용실에는 딱 맞게 도착했고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게 됐다. 거울 속 머리를 보니 영 이상해서 찝찝한 기분으로 전에 한번 들렀던 식당에서 왠지 쫓기듯 저녁을 먹었다. 1인석이 없어 4인석에 앉았는데 저녁 때라 손님이 자꾸 들어왔기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식당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또 들렀다. 100년 된 고택을 개조한 멋진 곳이라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반항아(?)가 머물기에 좋다. 기차에서 조금 쓰던 이 글의 마무리도 이곳에서 하고 있다. 매일 불 꺼진 빈 집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기분을 가늠하며, 아버지보다 일찍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켜놓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민.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음 책은 엄마와 다녀온 성지순례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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