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젯밤에 우린 결명자 차를 텀블러에 담아가지고 나왔다. 결명자는 아마도 2년 전쯤에 동네 방앗간에서 산 것인데, 이 씨앗같이 생긴 것을 어떻게 먹는지 몰라 크게 한 스푼을 떠서 컵에 담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서 후후 불어서 마시곤 했다. 우리 집에 왔다가 그 모습을 우연히 본 이가 "그건 보리차처럼 주전자에 우리는 거지 그렇게 먹는 게 아니야"하고 말했고, 나는 그 길로 커다란 스텐 주전자를 샀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선반에 모셔놓고 있었다.
그러면 이 결명자 차는 어떻게 우린 것이냐. 엄마집에서 가져온 약탕기-라고 부르는 게 맞나-로 우렸다. 엄마집에 갈 때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있는 약탕기를 보고는 "저것 참 좋아 보이네"하면서 은근 탐을 냈었는데, 이런 식으로 가지게 될 줄 꿈에나 알았나.
그리고 오늘 점심엔 김치찜을 만들었다. 엄마표 묵은지가 반포기 정도 있었는데, 김치찜에 다 넣으려다가 엄마 김치가 어떤 맛이었나 싶어 한쪽을 죽 찢어서 빈 속에 넣었다. 그래, 엄마 김치가 이런 맛이었지. 엄마가 담그는 김치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서,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해마다 김치를 담갔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아버지도, 외삼촌네도 모두 엄마 김치를 좋아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신촌역 스타벅스이고, 나는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해 결명자 차와 먹고 있다. 생각난다.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를 팔팔 끓여 식힌 뒤, 다 마시고 난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에 넣던 엄마 모습이.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낼 때면, 손끝에 닿던 주스병의 도돌도돌한 질감과 서늘한 냉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