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 년을 집필한 초당 신봉승 작가는 나의 은사님이다. 신봉승 교수님의 첫 수업은 기억이 생생하다. 칠순이 넘은 사극의 전설은 글쓰기의 ‘ㄱ’자도 모르는 풋내기 작가 지망생에게 오르지 못할 ‘거목’이었다.
“문. 사. 철 600(문학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이 먼저입니다.
재능을 타고났어도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모른다면 제대로 된 작가가 아닙니다.
무작정 쓰려고 하지 말고, 우선 읽으세요.
나의 독서량을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9년 동안 조선왕조실록 원전을 통독했어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죠.
지금도 매일 두 권 이상 읽어요.
독서는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테니, 그대들이 나를 이기기 쉽지 않겠죠.”
신봉승 교수님은 2016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정력적으로 읽고 쓰셨다. 나는 아직 '문. 사. 철 600'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결국 ‘거목’을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그래도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하여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참된 지식인이 돼라’는 당부는 끝까지 실천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지식인’은 고사하고, ‘참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덕이 깊은 사람은 요란스럽지가 않습니다.
자기 재능을 과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게 없습니다만,
그런데도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 안영옥, <돈키호테의 말> -
최근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가 옳았다’가 출간되었다. 도올 선생은 김어준이 진행하는 ‘다스뵈이다’에 출연하여 노자 철학에 관하여 설명했는데, 그중 ‘대기만성’에 대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어느 날 도올 선생의 할아버지께서 어린 도올에게 대기만성의 뜻을 물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도올 선생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라고 대답을 한다.
“노자 41장에, 대방무우(大方無隅), 대기만성(大器晩成), 대음희성(大音希聲), 대상무형(大象無形)이라 했다.
‘큰 사각형은 각이 없고, 큰 음은 소리가 없고, 큰 모습은 형체가 없다’는 맥락에서 풀이해야 하는데, 다들 대기만성을 오해하고 있다.”
도올 선생의 할아버지께서는 대기만성의 참 뜻을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로 알려 주신다.
“그러니, 대기만성 핑계 삼아 성공을 미룰 생각 말고, 당장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도올 선생 할아버님의 가르침을 들으니 벼락을 맞은 것 같다. 여태 ‘대기만성’을 핑계로 해야 할 일을 미뤄왔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도전도 하지 않는 현실과 ‘언젠가는 큰 그릇이 될 것이라는 백일몽’의 간극은 컸다. 비루한 현실과 근거 없는 몽상을 들키지 않으려고 요란하게 나를 치장했다. 그럴수록 내면의 불안은 쌓였고, 약간의 자극에도 흔들렸다. ‘억지 부리지 말고, 타고난 성품대로 살라’는 노자의 교훈과 반대의 길로 온 것이다.
이제야 신봉승 교수님께서 '문. 사. 철 600'을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반세기 동안 원고지와 펜을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으셨기에, 글에는 글쓴이의 인격이 드러난다는 것을 절감하셨을 것이다. 바른 마음과 자기반성 없이 반짝반짝한 재주만으로도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수많은 인연들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스승님은 이제 막 작가의 길로 접어든 제자들이 ‘좋은 사람이 되길’ 기원하셨다. 세속적인 욕망에 흔들려 스스로의 가치를 헐값에 넘기는 글쓰기 기술자는 되지 말라고 추상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움켜쥐는 헛된 망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셨다.
물론 ‘표현의 기술’에서 유시민 작가가 주장했듯이, 글을 잘 써서 돈을 버는 것은 떳떳한 일이다. 누군가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공감했다는 의미다. 전문 작가의 작품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수행평가, 논술시험, 자기소개서, 리포트, 기획안, 회의록, 논문 등 일상생활 속에서도 글을 잘 쓰면 목표를 이루는데 유리하다. 글을 잘 쓰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해 보이는 뇌섹남, 뇌섹녀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글 잘 쓰는 비법’에 관심이 많다.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도대체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온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나’를 표현하고 싶다. ‘유일한 나’로서 ‘유일한 너’를 존중하고 존중받고 싶다. ‘유일한 우리들’과 연대하고 싶다.
더는 초라하고 부족하다는 열등감과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은 허영심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싶지 않다.
우린 유일하기에 아름답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유일한 우리’를 안아주고 싶다. ‘유일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온기로 전하고 싶다.
글을 쓸수록 ‘유일한 나’로 살 수 있다.
쓸수록 인생의 주인이 된다.
행복해진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어느 날 큰 그릇이 될 것이다.
쓸수록 대기만성할 것이다.
오늘도 당신과 함께 글을 쓰고 싶다.
겁내지 말고, 일단 컴퓨터를 켜자.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