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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Jan 18. 2019

이야기의 부재.

왜 한국인들은 자기 이야기 피력에 소극적인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시절, 정말 듣고싶지 않지만 들어야만 하는 교양 과목이 있었다. 그건 바로 Speech 수업이었다. 말보다 글이 편해서 심지어 전화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나인데, Speech 수업이라니.정치를 할 야심도, 선생님이 될 생각도 없는 내가 대관절 왜 청중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첫 과제부터 골치가 아팠다. 교수님이 내 준 우리의 첫 발표 주제는, <아무거나> 였다. 이럴 수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메뉴가 아무거나 인데. “아무거나” 만큼 사람을 결정장애로 만드는 주제가 또 있던가? 특정 주제를 정해주면 그 주제를 생소하게 여길 학생들이 있을까 봐, 각자 발표하고 싶은 주제로 자유롭게 정하라는 교수님 나름의 배려였다.


두 가지 사실이 나를 당황케 했다. 첫째, 애초에 “발표하고 싶은 주제” 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둘째, 자유가 주어져 본 적이 없기에 “자유롭게” 고르라는 게 더 어려웠다. 정해진 토픽에 대해 조사하는 건 쉬웠지만 나 스스로 토픽을 정하는 게 이리 힘들 줄이야.


미술 시간이면 미술에 대해 발표하면 되고, 화학 시간이면 화학에 대해 이야기하면 되지만, 그저 발표가 목적인 수업에서 대관절 어떤 분야의 주제를 골라야 한단 말인가. 일주일 넘게 도서관에 들락거렸지만 하고많은 세상의 지식과 정보 중에서 적당한 주제를 고르는 것은 실로 고역이었다. 그냥 정해주면 편하잖아, 라며 교수님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배려심 넘치는 교수님은 준비할 시간을 넉넉히 주었지만, 나는 발표 이틀 전까지도 도저히 주제를 결정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 한심하기까지 했다. 딱히 우유부단한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돌이켜보니, 살면서 남이 시키는 일은 곧잘 했지만,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천하고 책임져 본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을 영어로 Self-motivated person, 또는 Self-starter 라고 한다. 나에겐 이런 능력이 거의 제로였던 것을 미국에 와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나 대신 중요한 것을 챙겨주고 늦잠 잘 때 깨워주는 엄마가 있었다. 게으름 피우거나 꾀를 부릴 틈도 없이 연일 바쁘게 이어지는 학원과 과외 수업이 있었다. 말이 방학이지, 방학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보충 수업”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을 내지 않아도, 주변 분위기와 상황이 저절로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강요적 환경에 놓인 수험생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국/영/수 외의 다른 과목 숙제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겨져서, “바느질로 가방만들기” 같은 가사 숙제는 엄마가 대신 해주신 적도 있었다. 준비물 사러 동네 문방구까지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준비물도 엄마가 사다 주셨다.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모든 가사 노동과 심부름에서 제외되었다. 심지어 친척의 경조사나 명절날에도 혼자 집에 남아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누군가의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추석이나 설날에도 혼자 집에 남아 과외를 받는 일이 잦았다.


집, 학교, 학원이 내 주요 동선이었고 그 외의 장소에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가 본 적도 없었다. 공부 외에 다른 인생 경험이라고는 전무했던 셈이다. 수험생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장래 희망조차 선생님과 부모님이 추천하신 유망직종 리스트 안에서 골랐으니,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 저것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보았더라면 그 와중에 무언가에 매혹되어 그것을 얻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어 보았을 텐데.


주어진 틀 안에서 이유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받는 주입식 교육과, 평생 과잉보호를 받으며 몸에 밴 의존적인 삶의 자세. 이 두 가지가 나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열 아홉살이나 먹었는데 내 손으로 밥도 지을 줄 몰랐고, 시간 맞춰 이행해 하는 각종 의무들 때문에 한동안 애를 먹었다. 나 대신 이런 것들을 처리해주던 부모님이 없었으니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와 미국 학생들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 일에 참여시킴은 물론, 학업을 핑계로 상전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시험 기간만 되면 한껏 날카로워진 내 비위를 맞추느라 온 집안 식구들이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 땐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부모님도 참 힘드셨을 것 같다.


미국 아이들은 네댓 살때부터 노동하고 얻는 보상의 과정을 체험한다. 마당에 떨어진 레몬을 주워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가판대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이웃에게 파는 것. 물론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가판대를 설치하고 가격표를 써 붙이는 등의 준비는 부모님들이 거의 다 해주지만, 무엇하나 거저 얻어지는 게 없다는 세상의 원리를 어릴 적부터 몸소 느껴보는 가치있는 경험인 셈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혼자 힘으로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


; 고민하기, 결정하기, 실행하기, 책임감있게 완수하기, 실패, 좌절, 다시 일어서기, 실패에서 배우기


는 그 어떤 지식보다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고 가장 유용한 기술이다.


영어에 Street-smart 라는 단어가 있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별개로, 세상 일에 밝고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Book smart 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오직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해지면 인생의 장애물과 각종 스트레스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능력과 자신감이 생긴다. 학업은 Academic achievement 를 위해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대끼고 내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Street smart 기술이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진정한 의미의 홀로서기를 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아는 것.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성숙한 인간. 나에겐 그런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발표 전날까지 스피치 주제를 정하지 못한 나는, 도서관에 가서 눈을 질끈 감고 아무 책이나 골랐다. 하필 손에 잡힌 책 두 권. 하나는 “History of Censorship on Literature (문학 검열의 역사)” 였고, 다른 하나는 “노예 역사와 흑인들의 심리” 였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노예 역사책의 일부 내용을 달달 외워서 발표하고야 말았다. 교수님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발표하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F 를 주지는 않으셨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끼며 여유롭게 다음 학생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발표하는 것을 들은 나는 큰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첫째, 발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발표할 내용을 직접 창작해서 써야하는 줄은 몰랐다. Speech 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발표 내용은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둘째, 나처럼 거창한 주제에 대해 발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자신이 잘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토픽은 다양했지만, 어떤 주제든 화자와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대단한” 이야기를 해야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결정을 못한 거였다. 다른 학생들은 소소하지만 직접 겪은 진솔한 이야기들로 듣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공감대와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민 생활의 고충, 전쟁 세대인 할아버지가 피난 오신 이야기, 자기 가족이 자주 해먹는 음식, 요즘 흠뻑 빠진 취미생활 이야기 (요가, 공예 등), 자기 나라나 민족에 대한 자랑거리, 문화, 역사 소개, 등등. 모두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해 왔다.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발음이 서툴러도,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Speech 라는 건 바로 저런 것이구나. “나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 화자와 청중이 교감할 수 있는 화제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풀어가는 것이었음을.


시시콜콜한 남의 개인사에 무슨 큰 관심이 있으랴 생각했으나, 오히려 청중들은 손을 들어 이런 저런 질문도 해 가면서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보잘것 없고 대단한 토픽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예 발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그 하찮은 이야기가 사실은 “진짜” 이야기라는 걸.


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한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디자인 수업 때에도 역시 비슷한 문제로 충격을 받았다. 교수님 왈, Art 는 Technique 의 문제가 아니라 Concept 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청산유수처럼 설명하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거나 고심하지 않았다. 교수님이 질문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줄줄 쏟아내는 미국 학생들의 언변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설명했다.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역사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이 그림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결국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한 아시아계 학생들 (자국에서 유학온 지 얼마 되지 않은)은 공통적으로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 중국인 여학생이 핑크색 리본을 그렸는데, 교수님이 이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그저 리본이 예뻐서 그렸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좀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정말 많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에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생각을 정립하면서 경험을 통해 Trial & Error 를 반복하며 자신을 실험하게 된다. 이 과정은 모든 이가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머리가 외치는 것과 가슴이 외치는 것을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라 착각하면서 끝끝내 자기 불행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스스로 내 미래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실패를 해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며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먼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경험이 바로 이런 고민의 해답을 제시해 준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을뿐더러 당장 눈앞에 닥친 학업의 무게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효심이 크게 작용하여 머리와 가슴이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타협적인 삶을 살게 되면 고난이 닥치거나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나를 이렇게 만든 환경이나 부모님을 원망하기 쉽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충분히 자기를 관찰하고 자기에 대해 공부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누가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해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나를 믿기 때문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풍부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보잘것 없다 생각한 나의 이야기는 결국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짜 이야기요 나를 설명하는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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