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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ventud Apr 17. 2016

춤추던 바람, Toledo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아빠, 나 너무 행복해. 다만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어요."

행여나 아빠가 속상해하실까 카톡을 보내려다 말았다.



환승역인 principe pio역에서 내렸다. 분명 여기는 그냥 지하철 역인데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에 넋을 놓고 서있었다. 역사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예약한 버스 시간 때문에 사진으로만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동양인은 둘러보고 찾아봐도 나뿐이다.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져서 둘러보니 그랬다. 유럽 국가에서 동양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여기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호기심 어린 눈빛이 싫지 않았고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인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즐겁다.


오늘은 마드리드 보다 더 기대했던 Toledo로 향한다. 부산에서 경주 가는 느낌이라면 와 닿을까.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며 도시의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세시대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대도시 마드리드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고성이 보이는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던 여행객 무리는 보이지 않고 나만 혼자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이라는 배짱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멈추기엔 풍경이 너무 근사했다.


마침 꺼내 든 이어폰에는 이 장면과 묘하게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보기 전에 이미 눈물이 나올 거 같은 기분이랄까.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서 그 장면을 눈에 담았다. 다시 오기 전까지 이 풍경을 잊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오르니 여행객들의 관광센터가 나왔다. 톨레도는 미니 열차나 2층 버스를 타고 고성 주위를 한 바퀴 크게 돌아보는 코스가 주를 이뤘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기분 좋게 살살 불어오니 지붕이 없는 2층 버스를 타기로 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노천카페에 들어갔다. 간단히 스페인식 오믈렛을 시켜서 테이블에 앉았다.



수첩에 메모를 하기 위해서 가방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는데 옆에 앉은 백인 중년부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어 보이고는 오믈렛에 집중하려는데 "뭐라 뭐라 꼬리아"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Yes, I'm korean"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둘이서 웃으며 그 말이 아니라고 그리스어로 오레아가 예쁘다는 말이라고 했다. 아하. 쑥쓰럽게 웃어보였다. 처음보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스페인에 오면 내리쬐는 햇살을 마음껏 즐기리라 마음먹었는데 지붕 없는 2층 버스에서 원 없이 만끽했다. 뜨겁기보다는 따뜻하게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참 좋았다. 구름은 꽃잎처럼 하늘에 흐들어지게 피어났고 초가을의 기분 좋은 바람은 태양빛에 물든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춤추게 했다.




꿈은 아니겠지

꿈이 이렇게 생생 할리는 없다.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이 공기, 바람, 햇살, 기분 평생 기억하리라.




"나 어떡해?"

스페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문장에서 느껴진 어감 때문인지 무슨 일이냐고 곧바로 답장이 왔다.

.

.

"나 이곳이 너무 좋아. 푹 빠졌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무엇이 내 마음을 그리 흔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순간에 온전히 살아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다음에 올 때는 꼭 소중한 사람과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혼자서 느끼기에는 너무 벅차 감당이 안된다. 혼자 여행이 외롭지는 않은데 이 장면을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




버스는 몇몇 정거장에 잠깐씩 정차를 했는데 그중 한 곳에 내려서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눈 앞에 보이는 큰 돌다리를 건너자 마을이 나왔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었는데 사람도 많이 없고 한적해서 걷기가 참 좋았다. 다만 사람이 너무 없어서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부탁할 사람까지 없었다.




마침 저 멀리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노신사 두 분이 보였다. 친구 사이 인 듯했다.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부탁드렸는데 활짝 웃으면서 찍어 주셨다. 친할아버지가 손녀 찍어주듯이 역광이라며 방향까지 바꾸고 가까이서 멀리서 여러 각도로 찍어 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함께 사진 찍기를 권했더니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웃는 얼굴이 참 근사했는데 살아온 인생 또한 멋스러우셨을 듯하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인생의 흔적이라고 하니 유추가 가능했다. 친구와 함께 온 여행이 얼마나 좋을지 묻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와 함께라면 청춘, 나의 벗이 내 청춘이기에.



꿈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태양이 노란빛을 띄며 기울어 지자 돌아가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달달한 커피 한잔 하려고 통유리 벽이 근사한 카페에 들렀다. 내가 마시고 싶었던 바닐라 라테 같은 건 없었다. 그렇지, 여기는 스페인이다. 바닐라 라테를 설명하는 나에게 종업원이 Cafe Bombon을 추천했다. 연유 같은 시럽을 추가했다고 하니 얼추 비슷할 것 같다.




달달한 커피 한 목음에 온 몸의 피로가 싸악 가시면서 돌아갈 생각에 서늘했던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다시 올 거니까 마지막인 것처럼 아쉬워 말자.

다시 올 거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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