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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ventud May 14. 2016

제주에 혼자 가는 이유

혼저옵서예

10:23pm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근처 게스트 하우스 'Mir'는 소등시간이 11시라 처음에는 내 예약을 망설였다. 택시타고 되도록 빨리 가겠다는 말에 예약을 할 수 있었는데


제주의 밤공항엔 택시가 없었다.


콜택시를 불렀지만 주변에 차가 없다는 문자만 달랑 왔고, 한꺼번에 몰린 승객들로 줄은 길게 늘어졌다. 거짓말처럼 택시가 가뭄에 콩나듯 드문드문 들어왔다. 서늘해진 밤공기에 택시줄이 줄어들지 않자 모두들 콜택시에 전화도 해보고 카카오택시도 계속 눌러댔지만 대답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시간은 11시를 넘겼다. 그러고도 내 앞에만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고 내 뒤로는 줄이 더 길었다.

마침, 계속 내 상황을 물어오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전화가 왔다. 그리 멀지 않으니 직접 데리러 오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택시 줄에 있지말고 3번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등 뒤로 느껴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쟤는 차를 구한거야?' 이런 기분이구나.

실제로 게스트 하우스는 정말 가까웠다. 차로 6분 거리? 원래는 픽업을 안하시는데 밤도 늦어지고 택시도 없다고 하니 일부러 데리러 와주신 것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게스트하우스 전망대에서의 아침


아침 7시, 여자는 여행지에서도 제몸하나 챙기기에 일이 많다. 머리감고 말리고 얼굴 단장, 머리 단장을 하고 2층 조식룸으로 내려갔다.


자연광이 식당안을 따뜻하게 채운다
여행에서 조식은 필수


따끈하게 내린 커피, 차가운 오렌지 주스, 가지런히 놓인 식빵, 케첩용기에 담긴 딸기잼 그리고 에그 샐러드. 빵을 따뜻하게 토스트기로 데워서 딸기쨈을 지그재그로 쭉쭉 짜서 펴바르고 에그샐러드도 몇스푼 듬뿍 떠서 두툼히 얹었다. 한입 앙 하자마자 맛있다.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한 맛. 아침으로 제격이다.


오늘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이동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길찾기로 검색해보니 38번 버스 한번만 타면 40분이면 도착한다.


버스가 보이면 버선발로 뛰어가 긴팔을 휘적휘적 흔들어서 누가봐도 38번 타는 사람인걸 알게 해야지. (지난번 제주에서 배운 제주네이티브 팁, 공항 가는길에 한참 기다린 버스를 어이없이 놓쳤다. 제주도민에게 왜 그냥 지나치냐고 물었더니, 확실히 손을 흔들어 표시해야 버스가 선다고 했다. 어쩐지.) 좀 있으니 버스가 도착했고, 무표정의 기사님은 고맙게도 내가 짐을 가지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내릴때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하며 내렸다. 속으로라도 피식 웃으시길 바라며.


버스에서 내리자 금빛물결 찰랑찰랑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동네 길목 길목을 지나다 보니 바다가 보였고, 곧이어 바다의 짠내도 코에 쑥 들어왔다. 함덕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는 정리되지 않은듯 정리된 꽃과 나무가 옹기종기 자기자리를 찾아 그만의 분위기를 흠뻑 뽑내고 있었다. 그리고 반가웠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에서 보았던 태양을 닮은 노란 표식.




일찍 도착해서 아무도 없었다. 캐리어를 마당에 두고 한바퀴 쭉 둘러봤다. 아담한 집이 안은 마당은 작지만 포근했다. 집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짜잔 하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노을지는 바다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짐을 두고 골목을 나오니 수제간식까페가 보였다. 카페 통유리로 바다전경이 보이니 뭐 하나 먹고 가야겠다 싶어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고 브라운 아이즈의 어떤 노래만 커피향처럼 쌉쌀하게 흘러나왔고 문밖으로는 잠에 빠진 리트리버 두마리가 보였다.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인상 좋아보이시는 젊은 주인부부 내외가 들어와서 나를 보시곤 반갑게 인사하셨다. 직접 만드신 한국식 수제간식이라며 아침에 구우셨다고 했다. 흑임자 크림 찹쌀 타르트 3000원. 흑임자라니 너무 좋고, 타르트인데
3천원이라니. 가격도 착하고 맛도 너무 좋았다. 건강하고 정직한 맛, 몸에게 미안하지 않은 맛이랄까. 잘라 먹으라고 주신 가위는 자세히 보니 에펠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단숨에 다 먹어버렸다.


혼자 오신거냐고 물어오셨다. 유독 제주에는 혼자 오는 여행자가 많아 어색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혼자 오는 이유는 다들 제각각일 것이다. 내 이유를 궁금해 하는 주인부부에게 말했다.


"저는 다른데는 몰라도 제주는 꼭 혼자서 와요. 왠지 제주는 다른 누군가의 기억으로 덮고 싶지 않고, 나만 생각하고 싶을때 오는 곳으로 남겨두고 싶어서요."


언젠가 그런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곳은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과 같이 갔는데, 시간이 지나 그들이 없이 다시 갔을 때는 원하던 원치않던 그 장소는 이미 누군가와의 기억으로 뒤덮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시간지나면 사람은 없고 장소만 남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미 그 장소가 그 사람이 되어버리기에 제주만은 아지트로 남겨 놓자는 생각.


제주도민이시냐고 물었더니 여자분은 부산, 남편분이 제주도분이라고 했다. "너무 부러워요. 여기 너무 좋잖아요. 아, 제주에 자주 오려면 제주 남자랑 결혼하면 되는구나!" 농담했더니 두분 다 크게 웃으신다. 어디를 갈 예정이냐고 물으셔서 제주 남쪽을 아직 안가봐서 내일은 그리로 간다고 하니 이것저것 얘기해주시려고 지도를 펼쳐보이신다. 풍경이 좋은 올레길에 드립커피가 맛있는 카페까지 추천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에도 간식으로 테이크아웃:)


꾸물꾸물하던 하늘에 서서히 해가 났다. 오후엔 바다색이 예쁘다는 함덕 서우봉 해변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좀 서둘러야겠다. 제주날씨는 밀당의 고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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