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ventud Oct 06. 2016

그때가 되면 알게 된다,  Ronda

1시간 40여분을 달려 론다로 가는 길.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소와 말이 한가롭게 노니는 목장을 지나, 작은 시골 마을도 지나고, 특대형 로즈마리 다발 같은 올리브 나무도 지나친다. 문득, 어제 독일인 부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






"나는 당신이 좋아요. 나를 나 자신으로 있게 하니까."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문구.


나는 내 못난 모습을 보고도 좋아해 주는, 그런 모습은 자기만 볼 수 있으니 더 소중하다는 그에게 감동을 받았으면서도 그 마음을 받기만 하고 주질 못했다. 나로 인해 조금씩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큰 사랑이라고 느꼈다. 나도 당신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고 준 마음을 똑같이 돌려주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사랑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거래.




그때는 이해하기 싫었던 말도 지금은 이해가 된다. 어떤 일은 반드시 어떤 때가 돼서야 만 알게 되나 보다.

모든 깨달음엔 적절한 때가 있다. 내겐 딱 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사람도, 마음도, 애정도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한 거다.

비도 맞고, 바람도 한차례 불어 오고, 비로소 햇살을 맞이했을 때야만 빨갛게 익는 때가 온다.

느려도 괜찮다. 더 단단해지고, 더 소중해졌다.








그 사이 버스는 론다의 터미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론다에서는 몇 시간만 머무를 예정이라 버스역에 얼마를 주고 짐을 맡겼다. 역을 나서자마자 아침을 시리얼만 먹고 와서 인지 허기가 졌다. 간단하게 먹고 가자 싶어 역가까이에 있는 어느 타파스 바에 자리를 잡았다. 점원이 추천하는 potato, fish, pork 세 종류의 타파스와 음료를 주문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네 동네 작은 식당에 가면 자주 등장하는 플라스틱 반찬접시에 참치를 넣은 차디찬 감자 샐러드와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어 만든 소스에 버무린 맛살(그러니까 얘가 fish), 그리고 종이짝처럼 얇은 수육에 올리브 오일 후루룩 두르고 검은색 소금을 뿌린 찬 것 삼총사가 줄줄이 나왔다. 오늘 저녁을 얼마나 맛있게 먹으려고 여길 오게 된 건지, 저녁을 뭘 먹을지 떠올려 보며 당장의 허기만 달랬다. 계산할 때 보니 한 접시당 1유로. 웬걸, 가격에 비해서는 어쩌면 잘 나온 편이었다.






텁텁한 입안을 커피로 달래고자 서둘러 일어났다. 구글 지도를 보며 10분 정도 걸으니 사람들의 무리가 보이고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전망대인 듯 보였다. 그리고 길가에 누군가의 얼굴 동상이 있었는데, 헤밍웨이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되었을 정도로 헤밍웨이의 론다에 대한 애정은 깊었다고 한다. 게다가 릴케는 이 곳을 연인과 함께 머무르고 싶은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꼽았다고 하니 얼른 보고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망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멀리서 훈풍이 불어왔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장대한 강이 흐른다거나 예쁜 꽃나무가 있거나 화려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코르크나무들만 여기저기 무리 지어 있는 풍경이었을 뿐인데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랬다. 여백이 필요했다.




가득 차서 더 이상 나 하나 끼워 둘 곳 없을 것만 같던 마드리드는 내게 생각의 여유를 주지 못했다. 론다의 풍경은 여백이 많았다. 내 생각과 고민들을 이것저것 따 끄집어내어 여기저기 널어놓는다 해도 여전히 넉넉한 공간이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 보면 풍경에도 여백이 필요하고 사람에게도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 마음에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

여백의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공간.













7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한 절벽 위의 도시 론다는 150m 높이에 달하는 누에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누에보 다리는 고지대에 위치한 두 마을이 협곡으로 갈라져 소통이 매우 어려워 건설한 다리라고 한다. 1735년 처음 제안되어 지어졌지만 무너지고 1751년-1793년까지 42년의 기간에 걸쳐 다시 지었다. '새로 지어진 다리'라고 해서 'Puente Nuevo(New라는 뜻의 단어)'라고 한다. 높은 협곡을 둘러싸며 하얗게 오밀조밀 밀집해 있는 호텔과 카페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풍경을 자아냈다.








더 가까이서 론다를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길목을 내려갔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분이 한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카메라를 두 손에 꽉 쥐고 어딘가를 찍고 계셔서 다 찍으실 때까지 기다렸다. 할머니는 그런 내게 기다려줘 고맙다고 하셨다. 길이 꽤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는데 할머니 혼자서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딛으신다. 할머니가 꽤 궁금해졌다. '왜 혼자이실까? 연세가 많으신데 어떻게 여행을 오시게 됐을까?' 결국 말을 걸고 싶어서 사진을 한 장 부탁드렸다.


"오, 나 이런 걸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거지?"

고상하게 들리는 영국 악센트다. 한 장 찍어주시고 확인해 보라고 한 다음에 또 한 장 더 찍어주셨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런던 가까이에 작은 소도시에서 그룹 투어를 신청해 오셨다고 하셨다. 그것도 동반인 없이 혼자서. 조금 놀란듯한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을 이어가셨다.



"문제는 내렸던 버스로 길 잃지 않고 돌아가는 건데, 잘 갈 수 있겠지? 호호호" 하며 소녀같이 웃으셨다.



내게는 그런 할머니의 패기가 700m 고지대의 론다를 처음으로 눈에 담았을 때의 느낌만큼이나 대단했다. 웬만한 젊은 사람은 울고 갈 만큼의 호기심과 도전정신. 걷는 것조차 마음처럼 시원스럽지 않은데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남기겠다는 열정만큼은 청춘이셨다. 정말 멋있었다. 먼 훗날 카메라를 두 손에 꼭 쥐고 여전히 신기한 것을 신기해하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하는, 눈빛만큼은 10대 기죽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며 할머니와는 인사를 나눴다.








용감한 할머니를 만난 탓인지 그때부터 지도가 아닌 오로지 감이 이끄는 대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번잡했던 메인 거리와 달리 골목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훨씬 한적하고 좋았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집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멀리서 보사노바풍의 기타 선율이 들려왔다. 조그맣게. 이리오라고 다 왔다고 부르는 듯했다.






작은 골목은 마치 다른 세계로의 연결 통로인 듯 가슴이 탁 트이는 또 다른 풍경속으로 나를 인도했다. 미풍이 살랑살랑 뺨을 어루만지고 바람을 타고 온 기타 소리가 온몸을 휘감아 내 마음을 기분 좋게 흔들었다. 작정하고 연주를 즐기기 위해 기타 케이스에 몇 유로를 넣고 돌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폰으로 기타선율 들어보세요. (모서리 공포증 있는 분들은 시청 삼가해주세요, 뾰족한게 잠깐 나옵니다:)


정말 좋을 때는 말로 형용이 안된다.


이윽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서서히 마음속 심해로 가라앉고 진짜 알맹이만 딱 떠올랐다.




사실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었다.

많은 것이 있어야만 행복할 거라는 욕심이 사실은 행복을 가로막고 있었다.

건강한 신체, 사랑하는 가족,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이따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이면 충분했다.


이렇듯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공기와 같이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알고 감사하는 삶이길.

늘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 같은 호기심만은 잃지 않기를.



이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본다.

시간이 흘러 또 다시 부질없는 것에 가려져도 결국은 진짜를 쫓는 삶이길.

매거진의 이전글 무기력에 대한 처방, Sevill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