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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ventud Nov 10. 2017

그 밤, 샹그리아의 마법

바르셀로나 여행 두 번째 이야기

그날의 아침


'오늘 뭐하지.....?'


눈을 뜨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스페인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보니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크고 북적이는 도시보다 좀 더 특색 있는 작은 도시들이 좋았다. 더군다나 여기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였기 때문에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듯했다. 어젯밤 먹은 짜디짠 콩 스튜의 여파로 뭔가를 더 사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슬렁슬렁 1층 카페테리아로 내려갔다. 그래도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조식을 먹으며 생각해보기로 한다. 샌드위치는 술술 마시듯 삼켜버리고 커피를 마시며 지금까지 지출한 금액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숙소를 정할 때 물가가 많이 비싼 곳이 아니면 다 호스텔로 예약했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호스텔이나 한인민박도 많지만 내가 정한 호스텔들은 대부분 다국적 여행객들의 평을 보고 선택한 곳이었다. 그 덕(?)에 숙소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숙소에서 한국말이 들렸던 것이다. 그것도 바로 앞 테이블이었다. 친구사이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며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그만 한마디가 너무 웃겨서 피식 웃어버렸다.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여기 카페테리아에 한국인이 나랑 그들뿐인지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굳이 변을 하자면 그랬다. 그분들도 내가 한국인으로 보였는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민망해하며 '한국말이 들려서요...'라고 했고, 내 쪽을 보고 앉아있던 남자가 괜찮으면 이쪽으로 와서 같이 얘기하자고 권했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는 역시나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 경진은 반듯한 모범생의 이미지였고, 성혁은 그와 상반되게 남자답고 자유분방한 이미지였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성혁을 만날 겸 경진이 휴가를 받아 이곳으로 왔고 둘은 함께 여행 중이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오늘이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눈을 반짝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저희는 인간 탑 쌓기 보러 가려구요."라고 말했다.


실은 너무 단순해 보이는 '인간 탑 쌓기'라는 이름과 불필요하게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보고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다는 내 말에 인간 탑 쌓기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오늘까지가 바르셀로나의 축제 "메르세"기간이었고, 오늘 광장에서 열리는 '인간 탑 쌓기'가 메인이벤트라고 했다.


메르세 축제는 매년 9월 카탈루냐 자치주 바르셀로나에서 도시의 수호성인인 자비의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종교 축제다. ‘메르세(Mercè) 축제’라는 명칭은 ‘성모 마리아의 축제’를 의미하는데, 카탈루냐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자비로운 신의 어머니’(La Mare de Déu de la Mercè)라고 부른다. 축제 행사는 종교적인 것에서부터 카탈루냐 지방의 민속성을 드러내는 전통 음악과 춤 공연, 거리 행진, 연극 공연, 운동 경기, 음악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행되고, 그중 불꽃을 들고 폭죽을 터뜨리며 시내를 달리는 ‘코레폭’(Correfoc)과 인간 탑 쌓기(Mercé Castellers)가 대표적인 큰 행사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어쩐지 어제 돌아오는 길에 시끌시끌한 무리들이 보였던 것 같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일부러 보러 오기도 쉽지 않은 행사를 바로 옆에 두고 놓칠 뻔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 두 사람과 함께 '인간 탑 쌓기'를 보러 가게 되었다. 나는 오늘 다른 호스텔로 옮겨야 해서 미리 체크아웃을 하고 리셉션에 짐을 맡겨놓고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른 오후에는 호스텔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화창한 날씨였다. 며칠 전 자라에서 산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부들부들한 가디건을 가볍게 걸치고 신나게 거리로 나섰다. 가는 길에 우리는 서로의 나이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둘은 서로 "나보다 못생겨서 내가 너를 친구로 둔 거야." 끊임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쉬지 않고 웃겼다.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을 증명했다.



축제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넓은 길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북적이자 나를 중간에 두고 성혁이 앞에서 길을 트고 경진이 뒤에서 걸었다. 나보다 한 두 살이 많아서인지 친오빠들처럼 든든했다. 가는 길 내내 사람들 틈에서 밀리지 않게 챙겨줘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겨우 비집고 들어온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쨍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무대도 설치되어 있었고 적지 않은 취재진도 참석한 꽤 규모 있는 행사였다.










흥겨운 연주가 울려 퍼지고 거인 인형들이 등장하며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자우메 1세와 그의 왕비 비올란트(Violant d´Hongria) 모습의 거인이 여러 지역의 거인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그리고 거리 예술가들과 무용수, 카탈루냐 전통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한 사람들이 행렬을 뒤따른다. 카탈루냐 광장 근처 펠라이 거리에서 시작해 두 시간 정도 시내를 순례한 후 산 자우메 광장에서 끝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르세 축제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다빈치 출판사)











퍼레이드가 끝날 즈음 체격이 큰 남자들이 등장해서 탑 쌓기가 이루어질 광장 중앙에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 탑 쌓기는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 놀이라고 한다. 카탈루냐 전역에서 초청된 참가 팀들이 튼튼하고 더 높은 탑 쌓기를 겨루는 행사다. 사람들로만 탑을 쌓기 때문에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와 협력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윽고 환호소리와 함께 알록달록 각자의 팀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엄청한 에너지를 뿜으며 탑 쌓기가 시작됐다.








지지대가 되는 아랫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팔을 엮어 기반을 만들어 주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들이 그 위에 올라 서로의 어깨를 잡는다. 그 위로 남자보다 가벼운 여자들이 올라가고 맨 위엔 4-5살로 보이는아이가 나무를 오르는 꼬마 타잔처럼 쪼르륵 올라간다. 사람들은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잔뜩 긴장을 하고 그 장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끝까지 다 오른 아이는 꼭대기에서 팔을 탁 치켜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중심을 잡는다.
















광장은 각 지역을 응원하는 응원소리와 성공을 축하하는 환호소리, 때로는 다른 팀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야유도 섞여서 축제의 분위기가 제대로 달아올랐다. 안전장치 없이 서로의 몸에만 의존하며 쌓아올리는 탑. 가까이서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을 보면 단순한 놀이나 축제 행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놀이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놀이가 아닌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전통문화가 되었다고 하니 그 표정이 이해가 된다.




우리는 마지막 팀이 탑을 쌓는 동안 조금 일찍 광장을 빠져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름만 듣고 큰 기대 안 했는데, 일부러 보러 올 가치가 있을만큼 볼거리가 풍성한 축제였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함께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해내는 장면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그날의 점심




"우리 뭐 먹을까?"



아직 맛있는 빠에야(쌀과 고기, 해산물, 채소를 넣고 만든 스페인 요리)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내 말에 두 사람이 여기서 제일 맛있게 먹었다는 빠에야 집으로 향했다. 유명한 곳이었는지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성혁이 물을 사 오겠다고 가더니 두병을 사서 내게 한 병을 건넸다. 내심 친구끼리 추억 만드는 여행인데 내가 너무 오래 껴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한 마디를 했다.



"세 명이 다니니깐 좋다. 자리 비워도 둘이 있을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잖아"



괜한 우려는 접어도 되겠다. 50분을 기다렸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10분처럼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우리는 치킨 샐러드와 돼지고기 스테이크, 빠에야 그리고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샹그리아는 보통 저렴한 와인에 사과, 오렌지, 레몬과 같은 과일을 얇게 썰어서 담궈 마시는 스페인의 대표 음료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료이기도 하다.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은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사실 스페인에 와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기분 좋게 먹고 남은 샹그리아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성혁의 학교 이야기, 경진의 직장 이야기, 내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샹그리아에 어울리는 이야기 안주거리가 한상 가득이었다.




그날의 오후



간만에 부른 배에 만족하며 식당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바로셀로니타 해변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어제는 항구밖에 보지 못했는데, 여기도 해운대처럼 모래사장이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모래사장에 깔 큰 스카프를 하나 샀다. 슈퍼에 들러 맥주랑 아이스크림도 샀다. 바로셀로니타 해변은 다른 북적이던 곳과 달리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해변이었다. 우리는 스카프를 너르게 펴고 바다를 바라보며 앉았다. 어느 순간 서로 아무 말 없이 경치만 보고 앉아있었는데 분명 오늘 아침 전까지 모르는 사이였는데 불편하지가 않다. 오래 알았던 사람들처럼 마음 놓고 앉아 그 시간의 흐름을 즐겼다.





"너 아니었으면 경진이랑 나는 여기 해변에 다시 올 일이 없었을 거야."





"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앉아 있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요."



오후의 해가 기울 때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보내기 아쉬운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낮에 점심을 거하게 얻어먹었기 때문에 내가 뭐라도 사겠다며 앞장섰다. 바다가 보이는 타파스 집의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문어구이, 오징어 튀김, 감자튀김 등 몇 가지 타파스를 주문했다. 점심때만큼의 훌륭한 맛집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돌리면 전람차와 보트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시야를 가득 채우는 노을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황홀한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홀리고 순식간에 밤을 불러왔다.




그날의 밤



이제는 자리를 비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짐도 새로운 호스텔로 옮겨야 하니 아쉽지만 인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걸로는 끼니가 될 수 없다며 경진이 람브라스 쪽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제는 슬쩍 사라지려고 했다는 내 말에 '저녁은 먹어야지~' 하며 망설이는 나를 이끌었다. 짧은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얘기를 나눈 탓일까. 금세 정이 들었다.



스페인에 오면 반 고흐의 그림처럼 별이 빛나는 밤에 야외 테라스 앉아 와인이나 샹그리아 한잔 앞에 두고 밤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혼자 가면서 무슨 배짱으로 머릿속에 그런 그림을 그려본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두 사람과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1888년,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레이알 광장은 반짝거리는 시선들로 가득했다.  광장 한 켠에 자리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식사와 함께 어김없이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우연히 들어온 캐주얼 레스토랑인데 음식 맛이 수준급이다. "우리 아침에 만났는데, 참 신기하다 그치?" 우리의 대화는 샹그리아가 줄어갈수록 더 깊어갔고 레스토랑 종료를 알리는 테이블 정리가 시작될 때까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잠들고 싶지 않은 스페인의 밤이 깊어갔다.





호스텔로 돌아와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사는 곳이 너무 달라 앞으로 보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지만 아쉬움이 남는다면 염치없을 만큼 오늘 하루 충분히 즐거웠다. 신기하게 여행 중 유일하게 그날만은 사진이 거의 없다. 그 흔한 음식 사진 한번 찍을법한데, 누가 찍지 말라고 말린 것도 아닌데 사진이 없다.




샹그리아는 묘한 힘을 가졌다.
'나중에 볼 사진에 담느라 지금을 놓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기억하렴 '





-에필로그-


다음 날 다른 도시로 옮겨간 두 사람에게서 영상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기 풍경도 너무 좋고 맛있는 것도 많아, 너도 왔으면 좋아했을 거 같아."

여전히 장난기 묻어나는 영상 속에서 잠시나마 한 팀이었던 나에게 보내온 '의리 의리한' 멘트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행길에 만난 오빠도 되고 친구도 되어주었던 정말 고마웠던 두 사람, 어디서든 그 장난기 잃지 말고 푸릇푸릇 잘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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