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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Oct 04. 2022

참견이 많은 가게, 변명이 많은 서점


나는 너무나 다정해서 모진 소리를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스스로 디폴트 값이 다정하다고 여기고 있는 탓에, 자연스럽게, 채무자처럼, 나의 다정함을 거슬러 받으려고 사람들한테 모진 소리도 거리낌없이 곧잘 한다. 막무가내로 잘 대해줬다가 이제 때가 됐으니 그걸 되갚으라는 식이다. 내 마음의 논리는 대충 그렇다. 나의 다정함은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한 갚지 않아도 되는 재난지원금 성격이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에 가깝다. 이자가 비싸다.


그래서 이자를 돌려받는다는 심정으로 싫은 소리를 내지르면, 다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양 당황하거나 돌변하는 내 태도에 학을 떼는 걸 몇 번이나 겪었다. 내 마음의 논리라는 게 사실 매우 폐쇄적이고 이기적이어서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심판이자, 객관적으로 균형잡힌 비평가라는 오만을 버리지 못하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내 마음 속의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뒀다가 하나둘셋 삼진이다 싶으면 드디어 스트라이크 아웃! 하고, 제스처를 넣어가며 크게 외치는데,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은 스트라이크나 볼에 대한 콜도 없이 조용하다가 갑자기 아웃을 외치니 황당한 기분인 것이다. 때문에 요즘은 불쾌하거나 부정적인 대화를 적립하지 않고, 되도록 바로바로 소분(小分)해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생각처럼 매끄럽게 잘 되지는 않는다. 돌려 말하는 버릇, 의뭉스러운 표현,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에 미숙한 자아.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 급발진하는 커뮤니케이션 습관이 가장 큰 문제다.  

그 습관을 오랜 시간에 걸쳐 고쳐 나가고 있는데, 오늘 굳이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나의 잘못된 소통의 결과가 아니고, 급발진의 산물도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리고 싶어서다. 특히 지금부터 어떤 서점을 사례로 한 이야기가 나올 텐데 절대로 한두 서점을 특정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그 중에서도 작고 조용하지만 훌륭하다고 소문난, **타운 오거리 근방에 자리잡고 있는 ㄱ0ㅅ0을 겨냥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 독립서점이 싫다. 영업시간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영업시간을 맘대로 어길 때마다 변명만 풍성해서 싫다. 약속된 영업 시간에 맞춰 세 번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또 무슨 개인 사정이 생겼다고 SNS에 고지하고는 서점을 찾아온 고객의 수고와 그 수고에 들인 시간을 책임지지 않는 적적하고 적막하지만 무책임한 서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SNS를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도대체 오늘 '왜 때문에' 서점이 제때 문을 열지 않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 번 허탕을 치고 약간 오기가 생겨 사흘을 내리 방문했는데, 세번째 방문한 날에는 겨우 문을 연 서점 주인이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랑 도란도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서점에서 떡볶음을 나눠 먹으면서 오늘도 역시나 영업을 안한다는 말을 듣고는 급발진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사람이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 미워 보이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미운 것이다. 


그 뒤로 서점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몹시 비빔밥이 먹고 싶어서 배달을 시켰는데 고추장이 빠져 있다거나, 뒤늦게 출근하고 나니 양말이 짝짝이라거나, 아무튼 저주인지 눈치챌 수 없는 사소한 불행이 연속되기를.


하지만 그 정도다. 거기까지다.


내가 겪은 불편을 서점에 되돌려준다고 해도 사소한 불행 이상의 큰 타격을 받을 만한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동네 서점으로 여러 사람들에게(나 빼고) 좋은 기억들을 나눠주며 건강하게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동네 가게들의 사정에 비하면, 나의 불편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부지런히 이런저런 장식들을 바꿔가며 골목의 풍경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상점 창문들, 쉽게 낡아서 여닫을 때마다 칭얼거리는 문 소리, 계절과 날씨처럼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만드는 가게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 임대료는 오르고, 코로나는 끝날 줄 모른다. 코로나는 이제 사람의 신체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라기보다, 작은 가게들처럼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곳을 골라 타격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모쪼록 이런저런 참견이 많은 동네 가게들도, 조용하지만 변명이 많은 서점도 모두 이 어려움을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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