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메탈리카, 책은 영웅문. 십대에 읽은 책이라고는 영웅문이 전부고, 들었던 음악은 메탈리카 밖에 없었다. 메탈리카 티셔츠를 몇 개나 사서 학교가 파하면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곧장 기타리스트가 될 기세였는데, 학교에 밴드 동아리를 만들고, 베이스를 잠깐 배우다가 손가락이 아파서 금세 그만 두었다. 어찌어찌 친구들을 모아서 밴드를 무대에 올리고, 엉망진창 콘서트를 열고 조악하게 만든 티켓을 팔아서 막대한 이문을 남긴 후에 모든 것이 시들해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비좁은 세계에서 커트 코베인을 만났다. 맨 처음 그 음악을 듣자마자 알았다. 나는 너바나를 들으려고 태어났다. 이것은 나를 위한 BGM이다. 나는 곧장 너바나와 연결돼 있었다.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공감이나 팬덤이라는 말로는 전부를 표현할 수 없는, 같은 세계에 부딪히며 살고 있다는 기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 너바나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힘차게 따라 부르면 내가 뭐라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큰 도둑이라도 되어야겠다고, 마음이 웅장해졌다.
십대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지겨워서 사무실 TV를 틀어 놓고 축구를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다음 번 A매치 경기 중계 예고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나의 올 타임 넘버원. 커트 코베인의 음악이 국가대표 A매치 경기 중계 예고 BGM으로 쓰이고 있었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다 말고, 갑자기 나는 울었다.
펑펑펑 울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너바나의 음악이 저렇게, 거지 같이 축구도 못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도 올림픽 본선도 아니고, 예선전 따위의 경기 중계 예고 음악으로 아무렇게나 소환돼서 아무렇게나 편집되고, 관객도 없이 TV 화면에 흐르고 있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나는 도대체 뭘 했나.
내가 뭘 했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TV를 끄고 보고서 작성하던 걸 멈추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불과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았지만.
흔히들 시간이 지나면 원래 의미 있어 보이던 것들이 자기 색깔도 바래지고, 뜻도 희미해진다고 하는데, 아니다. 원래 아름답고 훌륭하고 멋진 것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나 의미를 간직하는 데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서투르거나, 훼손시켜도 모른 척 하거나, 아무튼 온갖 핑계를 대며 그것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는 탓이다.
아직도 너바나를 곧잘 듣는데, 사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듣기에는 적절한 음악이 아니다. 이 음악을 함께 듣던 이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바나를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운동하러 가서 무거운 바벨을 반복적으로 들어올리거나, 끌어당기거나, 밀어내야 하는 순간에 너바나를 듣는다. 마음은 더 이상 웅장해지지 않지만,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떨 때는 바벨을 들다가도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지난 번에 퐁당에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일생 몫을 다하고 눈을 감게 되면 BGM으로 엄정화 가수의 엔딩 크레딧을 틀어 달라고 했는데, 한 곡을 추가하는 게 좋겠다. 너바나의 ‘lith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