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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Nov 07. 2022

순대국밥 먹으러 가기

친구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는데 거짓말처럼 날이 좋으니까 억울하다. 소파에 누웠다, 침대에 누웠다, 이리저리 뭉개고 있다가 세수하고 양치하고 길을 나서자. 편의점을 돌아 커피집을 지나, 정육점과 부동산을 지나면 시장 앞 네 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남대문 시장 쪽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복권방과 롯데리아가 주말에도 부지런하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복권도 사지 않을 것이고, 햄버거를 먹을 생각도 없다. 참 보기 드물게 단호한데, 먹을 것 앞에서만 단호한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자신을 보고 있으면 내심 좀 우습다.


참 한가하다 싶고. 그래도 한가한 팔다리를 앞뒤로 부지런히 놀려 오르막에 들어선다. 오션실업 건물을 지나, 에코백을 맨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연어 사시미 집을 지나, 이 동네에서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브라운스톤 아파트 건너편 순대국밥 집이다. 건물은 워낙 오래돼서 2층이 약간 주저앉았다. 그럴 듯한 간판도 없고 커다란 가게 창문에 가마솥 순대국밥이라고 붙여 놓았다. 다만, 가마솥 순대국밥이라는 말 그대로 정말 종일 커다란 가마솥에 국을 끌여 낸다는 사실을 알기에 잠깐 마음이 숙연하다.


찾을 때마다 나를 숙연하게 만드는 가마솥 순대국밥 옆집도 옆집의 뒷집도, 한 집 건너 그 뒷집도 최근에 모두 팔렸다. 허물었다. 땅을 파고 다지면서 터를 잡고 있는 중인데, 오늘은 휴일이라 가림막을 쳐놓고 쉬고 있다. 조금 긴 산책 끝에 순대국밥 집에 도착해 나는 루틴처럼 전자담배를 꺼내 피운다.


언젠가 프로젝트를 하나 끝내 놓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참 괜찮아서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전자담배 기기를 여럿 사서 하나씩 나눠 주고, 나도 그때부터 쭈욱 전자담배를 피운다. 어떤 사람은 전자담배를 조금 피우다가 잎담배로 돌아갔고, 어떤 이는 아예 담배를 끊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두 번은 기분 좋게 만났지만, 요즘은 간간히 근황만 전하는 수준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꾸준히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다 잊어버린 것인지, 원래부터도 사람들에게 데면데면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부를 친구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 주말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순대국밥 집에 들어서자마자 국밥을 하나 시키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이 집에 도착하면 나는 먼저 찬으로 나오는 생양파를 된장에 찍어서 먹는다. 세상 모든 양파를 싫어하지만, 이 집에서 내주는 양파는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주인 아저씨한테 이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지만, 주책일 것 같아서 말을 아낀다.


이 집 양파는 꼭 갓 태어난 아기 궁둥이처럼 아삭아삭하다. 맛있다. 순대국밥에 부추를 넣고, 새우젓 조금, 다대기 작은 스푼을 하나 넣고, 밥을 말아서 먼저 국물을 맛본다. 오래 끓여서 잡내도 없고 요즘 음식답지 않게 이런저런 양념의 맛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순대국밥을 먹기 시작하면 세상의 온갖 잡음이 사라지고, 오롯이 나와 순대국밥만 남는다.


국밥 집을 둘러싼 이런저런 낡은 주택들이 새 주인을 만나서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쩌면 조만간 이 집의 순대국밥을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배가 고프다. 좀 더 맛있다. 땅값이 더 올라서 나도 앞집, 뒷집처럼 좋은 값에 팔았으면 좋겠다, 좋겠지만 이 이상 땅값이 오르면 이 순대국밥 집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허겁지겁 입맛이 돈다. 나의 식욕은, 입맛은 땅값이며 임대료와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연동되어 있다.


순대국밥 집만 쏙 빼고, 동네 땅값이 열 배쯤 올랐으면 좋겠다. 주말이면 나는 나의 혼탁한 영혼에 맑은 국물을 들이부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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