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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Project Jun 18. 2023

서울에서 상가주택을 샀다

05.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너무 오랫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건물의 철거 전 사진들을 찾은 기념으로 기록을 다시 시작한다.




공사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이 집을 보자마자 우리는 둘다 삘이 왔다. 

"이 거 다!!!"



주변에서 정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별 특별하지도 않은 8-90년대의 벽돌건물.

처음 지을 땐 분명 건축주의 삶에 맞게 잘 만들어졌겠지만

이런저런 임차인들과 상황들을 만나며 이렇게 변해왔을, 

수십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던 그런 건물이었다.


나무로 된 계단과 반들반들해진 난간,

온갖 세월을 겪어오는 중간중간 고쳐지며 갖게된 한눈에 이해할 수 없는 동선과 구조, 

그리고 오래된 주택에 다들 하나쯤 가지고 있는 돌로 된 여인조각상...



그리고 그날- 암스텔담에 가야하던 그 새벽의 날.

밤새 잠을 거의 못자고 아침일찍 부랴부랴 들른 현장의 모습은 정말 처참했다. 1층과 특히 지하실..

아직도 이 누수의 슬픔이 지하실에서 느껴진다..

너무 상처받고 힘들어서 사진이 몇장 없다.

다시봐도 가슴이 철렁.

건물 전체가 공사중이었지만, 딱 한 곳에서만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쪽에도 물이 흘렀다..

내 얼굴에도 왠 짠 물이 막 흘렀었고.



뱅기 시간이 다가와서 가야했다. 내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도 없고. 도움도 안되고.

건축사님께 섬세한 처리를 부탁드리고 2주정도 자리를 비웠다. 

정말 정신이 없던 시절이라 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전화랑 메세지, 이메일을 엄청 보냈던 기억들이 있고

변호사 지인, 담당 건축사님, 임차인 등등 여러번 핑퐁 핑퐁 대화하며  

보상과 기타등등이 다행히도 무난하게? 흘러갔다.


지나고 보면, 그- 렇게 큰 일 아닌 일들이다.  




우리가 없던 우리의 공사현장은, 친절한 소장님이 매번 사진으로 공유해주신 덕분에 기록이 남아있게 되었다.


털고, 털고, 

또 털고, 또또 털고...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더 귀중한,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손도면. 이 건물의 첫 주인이었던, 한성대 미대 교수님께 받아두었다.

(오바스럽게도, 리모델링이 모두 마친 한참 후에 굳이 전 주인분 댁에 선물을 들고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우리는 정말 이 집이 좋았다.)

이 도면을 받고나서, 처음 설계할 때의 의도를 하나씩 뜯어보자니

왜 건물이 이렇게 지어졌지? 하던 의문이 사라지기도 했다.

실제 시공된 것과는 다른 부분도 꽤 있지만, 이제는 만나기 힘든 손도면이라니. 멋지다.




우리는 어쩌다 한겨울에 공사를 시작하였을까.

공사가 끝나가던 3월. 외부 페인팅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내 마음도 조금 안정을 찾았다.

리모델링 완공 후 찍어둔 사진

예전 남자친구.. 지금은 같이 사는 사람의 취향이 확실하게 반영된 외벽 페인팅. 빨강. 새빨강..

처음에 페인팅 마치고 지나던 동네분들이 많이 물었다.


"여기 뭐예요?"

"시뻘건거 보니까 저거 모텔이다!!" 

"... 그냥 집이예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지금은,

우리의 친구- 다미앙 뿔랑(Damien Poulain)이 페인팅을 해준 덕분에 더 화려한 모습이 되었다.

분명 주변 집들도 다 컬러가 있는데, 유독 우리집만 컬러로 보이는 착시까지 생기곤 한다.


Love Has No Size - Damien Poulain - Oct. 2021


건물에 작품을 올리고 나니 동네분들의 질문이 달라졌다,

"여기 어린이집이예요?"

"알록달록하니 동네가 훤하네~"

"그냥 집이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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