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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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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Sep 03. 2018

5시 19분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일요일. 스무 켤레의 양말, 스무 장의 편지를 차곡히 쇼핑백에 겹쳐 나왔다.

  역시나 새로운 골목이다. 일요일 낮 골목은 허전할 정도로 한산하다. 밤의 골목이 어두워서 무서웠다면, 낮의 골목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롭다. 누군가 살기는 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난 그 적막함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며 골목 군데군데 양말을 붙였다.

 

 양말은 금세 동났다. 덥다. 홀가분한 채로 더위를 식히러 카페에 왔다.

 

 갑자기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인스타그램이 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DM이 왔는데 볼 거냐고. 예, 뭐 그 비슷한 걸 눌렀다. 뒤이어 메시지가 보였다.




 헐!!! 

 그때, 카페 진동벨이 위잉-하고 울렸다. 진동벨만큼 나도 괜히 뛰었다. 메시지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도착했다. 





 양말이다! 정확히는 '내가 좀 전에 붙이고 온' 양말이다. 혹시 누가 볼까 후다닥 붙이고 온 양말이 누군가에게 들키다니(?)!  양말을 붙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혹시 마주친 사람이 있었나? 떠올려본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답을 했다. 안녕하세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다음에 또 오실 때 연락 주시면
예쁜 양말 한 켤레 들구 나갈게요!


 골목을 걷는 것, 우연히 발견한 양말에 눈길을 주는 것, 편지를 읽어보고 해시태그를 발견했다는 것, 그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서 나를 찾은 것, DM을 보낸 것. 너무 귀찮고 번거로웠을 과정을 기꺼이 하는 마음과 용기. 누굴까. 멋지다. 따뜻하고.


덕분에 너무너무 행복해요.
전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뒤이어 답이 왔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라는 문장은 묘했다. 사실 양말을 하면서 한 번도 양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한 일이 얼굴도 모르는 이를 행복하게 했다니..!  나도 어쩔 수 없나 봐... 바라지 않음이 전제가 된 프로젝트인데 피드백이 오니까 너무나 기뻐...

  

 정말로 나는 이 메시지를 받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었다. 하루가 양말만큼 좋았다. 너무 신나서 방방 뛰면서도 왠지 모르게 짠해져 또 글썽이다가 다시 신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대문 앞 누군가의 시선이 양말과 그 너머의 나에게 닿았다. 한 번도 특별한 적 없던 5시 19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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