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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Sep 07. 2022

헤엄칠 결심

진짜_최종_수영강습_신청


수영을 못 한다.


만약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도

하늘과 풀장이 하나가 된 배경에서

누가 부른 듯 살짝 뒤돌아보는

인생샷 트렌드가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트렌드가 없어서였나? 딱히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튜브 타고 놀면 되니까.


하지만 결정적 사건 두 가지로 인해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사건 : 2018년 강원도 양양


서핑이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싶지만.  

친구들과 서핑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양양으로 갔고 입기만 해도 둥둥 뜨는 수트를 입었다.

서핑 보드는 무거웠고,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일으키기란 보기보다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그러다 파도에 떠밀려 좀 더 깊은 곳으로 가게 됐는데

갑자기 훅 깊어지는 바닥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이 공포스러웠다.

경험해본 적 없는 이상한 종류의 공포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테트라포트 더미 바로 앞이었다.

어쩔 줄 몰라 테트라포트에 몸을 기대 버티고 있었고

마침 옆을 지나가던 프로 서퍼의 눈에 띄었다.


그는 내 서핑보드 끈을 자기 허리에 척 두르고는 나에게 말했다. 보드 위에 가만히 엎드려서 양팔만 물에 슥슥 허우적(?) 거리라고. 그것도 무서웠지만 내 목숨 줄을 허리에 두른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초면인 프로 서퍼 덕에 무사히 살아남았고, 나중에야 테트라포트가 무시무시한 녀석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영을 배워야겠다 1차 다짐하게 된다.



두 번째 사건 : 2019년 태국 끄라비


마음속 한편에 스노클링이라는 로망이 있다. 마침 끄라비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이때다! 싶었다. 스노클링 할 수 있는 섬 투어를 신청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 롱테일 보트가 처음으로 멈춘 곳은 바다 한가운데였다.


심지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에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뛰어들었다. 나도 그래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무서웠다. 내가 상상한 스노클링은 투명하고 얕은 바다에서 하는 거였는데! (이 그림은 세 번째 스팟이었다…)


어찌어찌 뛰어들어 시퍼렇게 떨었다. 이런 상황에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 정상인가요? 목에 걸고 있던 방수팩을 들어 올렸다.

그때 내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물이 2/3 차있는 방수팩이 보였다.


로망이고 뭐고 갑자기 리얼 생존 멘붕 다큐인 줄. 망망대해에 발은 안 닿아서 무서워 죽겠는데 핸드폰이 잠수하고 있는 방수 안 되는 방수팩이라니.

(결국 핸드폰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때 나의 공포심은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더더욱 수영을 배워야겠다 마음먹었다. 내 몸은 지키자.라는 생각으로.


그 무렵의 나는 퇴사원이었다. 퇴사하면 하고 싶은 것, 퇴킷리스트를 썼고 수영은 1순위가 되었다.


드디어 때가 왔어! 비장하게 지자체 수영 센터로 달려갔다. 근데 이미 마감이었다. 접수 첫날이었는데. 수영이 이렇게나 인기가 많다니? 나만 몰랐던 세계에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영 강습은 너무너무 인기가 많고 경쟁이 어마어마해서 누구 한 명이 죽어야 자리가 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란다.)


다음 신청 때 더 빨리 달려갔다. 또 마감이란다. 그리고 다음 신청을 노리고 있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삼고초려도 코로나 앞에선 이고초려까지만 가능했다. 이후엔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워라밸 없는 삶에 수영 배울 엄두를 못 냈다.


그렇게 2년이 흘러 2022년 여름.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에 새로 생긴 수영센터 현수막을 보았다. 잊고 있던 숙원사업(=수영)이 생각났다.


‘내가 수영을 배우려고 했던 게 벌써 2년 전 일이구나. 시간 정말 빠르네,, 이러다가 20년 지나있겠어,,,’


고민 끝에 용기  학원에 전화했다. 근데 이미 마감되어 대기자로 올려놔야 한단다. 아침 7 클래스였는데. 신기했다. 만약에 취소하는 사람들 생기면 연락 주신다고 했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누가 죽지는 않은 모양이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건강한 생존 여부에 마음은 놓였.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2년 전이랑 너무 같은 그림이잖아?!! 그리고 난 지금 not 퇴사원,, 회사원이니까 머니 쬐끔 더 쓸 수 있잖아~~~? 난 다시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숨고에서 수영 강습을 찾아봤다. 지자체 수영센터보다는 expensive하지만 수영을 배울 수만 있다면,,, ok,,, 그렇게 수영 강습을 시작한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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