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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an 14. 2021

출간 제안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종 불발. 그런데 나는 '최종적으로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곤 안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출간 제안을 받은 후 미팅 전까지 부랴부랴 기획서를 작성하고, 고속열차로 한 시간 남짓 (뚜벅이니 시내버스 타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두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미팅까지 간 사람이, 거절 메일을 받고 왜 안도했을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니.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 출간 제안을 받고 미팅 전까지 머리가 아팠다. 그토록 출간하고 싶었는데 막상 제안을 받으니 막막했다. 그저 편하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말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볏쭈볏 설정도로 쥐가 났다.




"대체 내가 쓰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기획서라도 작성해야겠다 싶어 워드 파일을 연다. 가제, 기획 의도, 콘셉트, 대상 독자, 구성안, 구성 내용, 경쟁 도서 그리고 마케팅 포인트까지.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가도 또, 남들이 다 하는 그런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는 약간의 허세가 마음속에 있었다. 얼추 감이 오다가도 또 뒤죽박죽 중구난방.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기획안이 되었다. 내가 가진 걸 다 쏟아야 한다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내 기획안에는 그게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없었다. 출판사가 먼저 제안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했다.



째는 출판사의 방향에 있었다. 매우 작은 출판사라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대형 출판사가 나에게 먼저 제안을 줄 정도라면 내가 얼마나 더 유명해야 할까. 지금으로선 소형 출판사라도 먼저 제안을 준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소형 출판사이니 오히려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지배했다. 물론 앞으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마케팅도 넘어야 할 산이지만, 출간 전이니 괜스레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니 그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출판사의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 대형 출판사라면 방향이 다양할 텐데 몇 권의 책밖에 출간하지 않은 소형 출판사는, 특히 주제가 딱 정해진 출판사라면 그 출판사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맞아야 한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이고, 그걸 책으로 출간해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은 출판사이니깐 입장이 다르니 결이라도 비슷해야 한다. 적어도 시작할 때. 하지만 내가 그걸 가타부타할 입장도 아니고, 위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걸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귀하는 훌륭하나 우리 회사와 방향이 다름을 느꼈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면접 후 회사에 이런 문자를 받았다면 "방향은 무슨 방향? 그냥 스펙 더 좋은 다른 사람 뽑겠다는 말을 거창하게도 써놨구나." 툴툴 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퇴사 후 세계여행"이라는 주제로 출간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나의 취향 문제다.) 세계 여행을, 그것도 젊은 나이에 하는 것도 좋지만, 나에겐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세계 여행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여행까지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퇴사 후 떠나야 한다는 에세이 주제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단 꿈을 좇는 그런 허황된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현실 속에서의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 후 다시 현실이 이어진다는 결말이 좋다. 잠시의 쉼에서 느끼는 여유, 긴 쉼이라면 안식년 같은 쉼을 좋아한다. 어쨌든 삶은 다시 이어져야 하니깐.


  

미팅 과정에서도 나는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쥐어짜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이 출판사 방향과는 맞지 않다는 것. 아마 출판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중간쯤 읽다 덮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아, 확실히 이 출판사와 나는 결이 맞지 않구나.


"방향? 그거 개나 줘버려. 일단 출간 계약서를 따내는 것이 최우선이야!" 미팅 전의 나는 취준생의 마음이었달까? 하지만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 음! 개한테 줬던 거 다시 뺏어야겠다. 출간 계약서를 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니깐.



미팅까지 갔지만 이후 거절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이제 다시 글 쓰고 싶은 욕구가 샘솟기 때문.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 내가 원하는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니, 이것 또한 이득이다. 그리고 나의 방향이 확실해지면 다시 기획서를 써야겠다. 꾸준히 책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쓴 출판사에 기획서를 제출해봐야겠다.


다시 브런치를 열심히 써야겠다. 그거면 충분한 이득이다. 나는 어쨌든 한 발 내밀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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