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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Dec 13. 2020

초기 자본 없이 시작한 n잡러ㅡ디지털 노마드의 세계

나는 어떻게 프리랜서가 되었나.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스크 없이 외출조차 하지 못하고, 밖에서 '노마스크인'을 만나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시대에 살 거라고는.


"우리 둘만 있으니깐 이제 마스크 벗을까?"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선뜻 "그래."라고 답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내 눈치를 보더니 벗었던 마스크를 쓱- 다시 쓰는 친구에게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아님 당연한 일인지. '그럴 거면 만나지 말았어야지..'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아예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버티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언제 코로나가 다시 확산될지, 대체 이 시국이 끝나기는 하는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이 시국에 먹고 살만할까?




의외로 난 잘 버티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꽤 오래 프리랜서 생활을 해오면서 구축해놓은 인프라 덕분이고, 둘째는 오랫동안 빈곤기와 풍요기를 거치면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흔히들 이를 n잡러라고도 부른다.


'한 가지 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없.' 또는 '언제 이 일을 그만둘지 모르니 보험 하나 들어놓자.'라는 마음으로 직장인들도 여러 가지 일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건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쩌다 n잡러가 되었을까.



2년간 죽자고 공부해서 (사실 그렇게 죽자고 공부하진 않았다. 취준생 시절 더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어쨌든-) 취업을 했다. 그 순간 보상 심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취업도 했으니 나도 명품 가방 하나쯤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하지만 나는 그 보상 심리를 명품에 쓰지 않았다.


나는 여행과 카메라에 썼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겐 신의 한 수였다. 여행과 카메라, 그리고 따라오는  하나 더 있지. 바로 기록이다. (요즘은 인스타와 유튜브가 더 대세지만 나는 남들이 싸이월드 할 때 블로그를 시작한 사람이다).

블로그하다 보면 얻을 수 있는 수입원이 몇 가지가 있다.



제품 협찬(이건 수입원이라기보다는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애드 포스트(블로그에 붙는 광고를 클릭하면 얻는 수익, 이건 진짜 한 달에 얼마 되지 않는다.),
원고료(제품을 공짜로 받는 것보다는 원고료를 받는 것이 진짜 수입원이다.


하지만 나와 맞는 광고가 매번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에 이건 수입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용돈벌이 정도.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정도? 나름 괜찮은 것만 걸러가면서 받기 때문이다. ) 등등.


여기서 나는 멈추지 않고 공모전에 도전 했다.
'블로그 공모전(블로그에 여행기 쓰는 공모전)' 또는 사진 공모전이나 영상 공모전(UCC 공모전) 등. 내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시민기자나 서포터즈 활동도 했다.
이 활동들은 대부분 여행기나 기사를 쓰고 돈을 버는 건데 칼럼에 비해서 원고료는 훨씬 적지만 지원 자격이 관대하고, 더불어 꾸준히 하다 보면 제법 쏠쏠하다. 이 모든 것이 회사 다니면서 했던 부업이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을 시작했다.


경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번역을? 왜 하필 번역을?궁금할 것이다.


나도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여러 회사를 알아보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공단이나 공사는 실력이 안 되어서 못 가고, 일반 회사는 '내가 이런 곳에 가려고 그만두었나.'라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는 내 실력으론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 인정하자. 내가 부족한 거다.)


회사를 취업하기 전에 '한 번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해보고 싶었던 것 중 초기 자본도 안 들고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번역이었다. (외국에 살아본 적 없는 내가? 문과도 아니고 이공계 나온 내가? 어찌 그런 자신감이 생겼지?)

경력이 없으니 처음엔 재능 마켓으로 번역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재능 마켓을 이용하지만
내가 처음 시작할 땐 꽤 블루오션이었고 난 거기서 의외로 좋은 평을 받으며 경력을 쌓아갔다.
(물론 시행착오가 있었겠지? 아예 듣도 보도 못한 분야를 도전한거니깐 당연 안 좋은 평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 경력으로 번역 회사에 이력서를 돌리고 (물론 토익 점수와 외국계 회사를 다녔던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테스트를 보고 합격하면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니깐 현재 나의 본업은 번역인 셈이다.)


그것도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영한 번역가.
의뢰받아서 공부한 부분은 꼭 블로그에 업로드해두었다. (세컨드 블로그)
그 글을 보고 의뢰하는 사람도 제법 됐었다. (번역에도 블로그가 용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기 공모전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영한 번역가. (왠지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실력은 없는데 운은 좋아서 책 번역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그 경험 한 번이 얼마나 큰지 어디 가든 내 이력에 꼭 넣어둔다.
(왠지 있어 보여서. 내가 번역한 책 한 권이 있다는 건!)

그럼 이제 내가 말한 직업이 번역가, 블로거, 시민기자, 프로 공모전 수상까지 했지?




그런데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번역 문의가 많이 들어오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일하는 삶을 꿈꿨지만 그건 이상에 불과했다. 집중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니터 두 대와 관련 서적들이 곁에 있는 집이 편했고, 일이 많은 날이면 2,3일은 물론이고 길면 일주일까지도 집에만 붙어서 자판기만 두들겨댔다.


눈곱도 안 뗀 상태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엄마의 눈초리에
괜히 화를 내곤 했었다. (사실 정확히 따지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괜한 자격지심이었지.)

"회사 다니는 사람도 맨날 사무실에 앉아서 나랑 똑같이 일해! 그게 나는 집일뿐이지!"
일의 능률은 떨어졌고 나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회사와 다른게 하나 더 있었다.


좀 쉬려고 일을 거절하면 내 일은 다른 번역가에게 넘어가고 갑자기 일이 뚝 끊기게 되니 빈곤기와 풍요기가 극에 달한다는 점. 수익도 마찬가지다. 일한만큼 버는 세상이니깐. 그래서 늘 불안했다.

(다시 말하지만 블로그는 그저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는 취미 정도. 수익도 딱 그 정도였으니깐.)

그렇게 불안한 시기에 여행 칼럼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꾸준히 해온 블로그 덕분이지.)



칼럼이란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를 기고하는 일을 말한다. 물론 건 바이 건, 혹은 프로젝트성으로 한 달, 두 달, 길면 일 년 단위로 하는 일이었지만,
번역 일이 줄어들면 칼럼을 쓰고, 번역 일이 많아지면 칼럼을 줄이면 되니 만족도도 올라갔다.


'여행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일감을 받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늘 먼저 문의가 왔었고, 잡지사에 내가 먼저 이력서를 보냈을 때엔 늘 답이 없었기 때문.


아무래도 잡지사나 신문, 혹은 이와 관련된 기업들은 인력이 필요할 때 직접 연락을 하는 편인 것 같다.


인맥이 중요하다. 인맥이 없다면, 블로그나 sns로 자기를 홍보하는 것이 필수다.
언제 어떻게 기회가 닿을지 모르니.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나에게 프로를 선물해준 것이다.

"이거 후기 남겨야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저 고마움의 선물이란다.
고프로라는 신세계를 만나고 나서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DSLR은 물론이거니와 폰으로도 영상을 찍을 수 있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영상을 찍어야겠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프로를 받으니 뭔가 영상을 찍어야만 할 것 같았다.)


영상을 찍고 독학으로 편집을 배워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뭐 한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 그렇게 올리다가 일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입질이 좋다.






이제 광고 제안까지 들어올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유튜브를 시작한 후 생각보다 많은 제안이 들어온다. 블로그와는 차원이 다른 제안들이다.
이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직업으로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러진 못할 것 같으니깐. 하지만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성과는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이 시국에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외부 활동을 줄였다. 딱 그 시기에 새로운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내 집에서 번역 일만 했었다. 그러다 번역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갑자기 유튜브 구독자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주로 '국내 혼자 여행' 영상을 올렸었는데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 영상이 자연스럽게 조회수가 올라간 것이다. 그러면서 유튜브 수익이 나고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


그리고 국내여행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여러 칼럼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거마저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래도 나는 할 일이 있었다.




그간 다닌 여행 사진이나 여행기 중 다른 곳에 제출하지 않은 것들을 모아서 공모전에 도전을 했고 (어떤 것은 유튜브에 올린 영상 그대로 제출했다.) 현재 좋은 결과를 얻어 수익이 나고 있다.


(작년에 비해 성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뭐... 크지 않아도 어쨌든 이런 시기에 수상금을 받을 수 있다니 감사한 일이다. 참고로 공모전과 수상 소식은 연말에 나는 편이다.)

그 외 시민기자 활동, 스톡 사진작가(스톡 사진 사이트에 사진을 판매)와 영상 판매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이마저도 이 시기가 길어지면 수익이 뚝 끊기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전에 또 다른 일에 도전하며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sns를 잘 구축해뒀으니 이 세계가 망하지 않은 이상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있다. 그건,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꾸준히 sns에 업로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을 하는데도 블로그를 하고 여행기를 쓰는데도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는데도 나를 알려야 하는 이유. '초기 자본 없이 n잡러'가 되기 위해.
아...


요즘 자신감이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고 나니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그래!! 무엇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는 일이 없을 때 가장 창의적인 활동을 했었고,
감사하게도 그 일이 지금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불안하지만 잘 버텨낼 것이라는 자신감만은 잃지 말자. 나는 언제나 잘 버텨왔으니깐.
그러니깐 조금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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