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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n 28. 2023

바쁜 아침, 식사를 차려 먹는 이유

카이막, 꿀, 모닝빵, 써니사이드업, 그리고 라테

     보통 우리 집의 아침 시간은 매우 정신없다. 내가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면 남편은 내가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진우와 놀아주고, 샤워를 마친 내가 진우의 아침을 차리고,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간식을 싸고, 옷을 챙기다 보면 출근할 시간이 되어있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운이 좋게도 나의 친정 엄마가 육아에 많은 도움을 줘서, 일주일에 이틀에서 삼일은 남편과 나 둘이 아침 시간을 보낸다.


     진우가 없는 아침이라는 생각은 으레 우리를 늦잠 자게 만든다. 평소보다 10분, 많으면 20분은 늦게 일어난다. 아무리 늦게 일어나더라도 아기가 없는 아침은 여유만만이기 때문에 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나를 위한 아침을 차려 먹는 일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은 '빵식'이다. 적당히 구운 빵에 카이막이나 클로티드 크림, 그리고 꿀을 올려 먹고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 과일이 냉장고에 넉넉한 날에는 멜론이나 포도, 블루베리를 먹는다. 단백질은 빠질 수 없으므로 써니사이드업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내가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시간 촉박하지 않아?"하고 말을 건넨다. 나는 "괜찮거든"한다. 사실 괜찮지 않을 때도 있다. 천천히 식사를 하다 보면 진우가 있을 때보다 늦게 집에서 출발할 때가 있어, 그런 날은 아침 조회 시간에 1-2분 늦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굳이, 그, 바쁜, 아침에, 식사를 차려 먹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지난 월요일 국어과 선생님들과 연수를 듣다가 찾아냈다. 연수 주제는 '그림책 감정 코칭'이었는데, 강사님께서 <불안>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신 후, 우리에게 책 모양 종이의 맨 첫 페이지에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에 세 가지를 적었다.


일희일비하는 나

'나'를 잃는 것

진우가 아픈 것


     내가 바쁜 아침에 시간을 쪼개서 나를 위한 식사를 챙겨 먹는 일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여유라곤 없이 눈앞에 놓인 과업들을 해결해 가며 살아가는 내가, 나만을 위한 시간을 짧게나마 온전히 보내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의식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뒤돌아보니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나의 의식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우연히 시간표가 바뀌어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이 없는 날은 외출을 달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옷구경을 하고, 백화점 지하 식당에서 야끼소바를 먹는다. 일찍 조퇴가 가능한 시험 기간에는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네일아트를 받거나, 헬스장에 가서 고요함을 만끽하며 운동을 한다. 아니면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밤이면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어 놓고 많이 싸지 않은 적당한 가격의 와인에 닭발과 부라타치즈샐러드를 먹는다.(음식 조합 무엇.. 그런데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안주이다.) 또 육아에 너무 지쳐있는데 혼자 있을 수 없는 밤에는 남편에게 진우 재우기를 부탁하고 혼자 산책을 하다가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베라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오가는 사람 구경하면서 멍 때리다 집으로 돌아간다.

     일과 육아만 하며 나를 잃고 살아가는 나를 상상했을 때 가장 무섭다. 조금 유난스럽고, 청승맞아 보여도, 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오롯이 혼자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일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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