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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02. 2023

회복의 순간

     7월이다. 7월이라 함은 새 학기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었다는 뜻이고, 방학이 눈앞이라는 뜻이다. 4개월을 내리 쉬지 않고 달려오면 꼭 이맘때쯤 체력이 바닥난다. 우리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감기, 몸살, 인후염, 성대결절, 원인 모를 피로감에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개중 나는 좀 나은 편에 속한다. 눈에 띄게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적도 없고, 목이 칼칼해 미리 아플까 봐 겁나서 병원에 간 적이 한 번 있는 정도이다. 체력이 이 정도 버텨주는 것은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근력운동 때문이리라 자부하면서 학교에 다니던 참이었다.

     그런데 큰일 났다. 지지난주부터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입병이 나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에 세 번 정해놓고 가는 헬스장에 금요일 밤 꾸역꾸역 다녀와서는 느꼈다.


'아, 나 지금 운동할 몸이 아니네.'


30분 인터벌, 20분 인클라인, 10분 마무리로 타던 러닝머신을 탈 수 없었다. 몸이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마시던 술이었는데 주초에 마시면서 또 느꼈다.


'아, 나 지금 술 마실 몸도 아니구나?'


     그래서 요 며칠 몸을 사리고 있다. 내가 제일 즐기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다하고 사이다와 제로 콜라를 마시고, 운동은 일단 안 한다. 밀가루 말고 쌀밥을 챙겨 먹는다. 아기를 재우고 눈을 부릅뜨고 보던 책, 휴대폰, 영화를 뒤로 하고 그냥 같이 잔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이 피로가, 다 소진한 것만 같던 체력이, 일순간에 회복되었다고 느껴진 순간이 바로 어제였다.

     토요일인 어제, 오전에는 예약해 뒀던 진우 소아과 진료를 보느라 약간 진이 빠졌다. 그래도 점심에 외식을 하러 가서 명태조림에 돌솥밥을 든든히 먹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니 조금 나아졌다. 남편이 오후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기로 한 날인터라 남편을 서울로 보내놓고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 아빠, 그리고 민희가 있는 집에 진우를 데리고 가니 내 몸이 자유가 되었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짜증이 한껏 나있는 진우를 엄마가 방으로 데려가 재워주었고, 그 시간에 나는 안마의자에 앉아 15분짜리 안마를 두 번 했다. 엄마가 내 상장, 성적표들을 정리해야 하니 버릴 것을 버리라고 해서 고등학교 때 성적표, 대입을 위한 자기소개서, 대학 때 썼던 과제물들을 들여다보며 다 같이 수다를 떨었다. 아빠가 사 온 꿀떡을 먹고, 조금 졸음이 와 진우 옆에서 한두 시간 꾸벅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저녁 시간이어서 TV를 틀어놓고 <지구오락실>을 보면서 깔깔 웃으며 엄마가 해준 갈비찜에, 해물부추전에, 밥을 먹었다.

     근데 그 순간, 놀랍게도 나는 내 몸이 '회복'되었다고 느꼈다. 근 2주 간 몸을 통해 느꼈던 무거움이 사라져있었다. 가족의 말없는 지지, 안온한 시간, 그리고 엄마가 해준 밥이 나를 제자리로 데려다준 것이다.

     어젯밤 나는 이 충만함을 고스란히 느끼며 반신욕을 하고, 술 대신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봤다.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개운했다. 아마도 내일은 운동도 갈 수 있을 것이고, 학기 마무리를 위해 쌓인 일들도 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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