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다. 올해가 시작하면서 언어화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렇듯이 나도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1. 책 ‘좀’ 읽기
2. 글쓰기를 ‘시작’ 해보기
3. 운동 꾸준히 하기
이것들, 상반기까지는 그래도 꽤 잘 지켜냈다. 읽은 책들을 기록해 두는 어플을 켜보니 상반기 동안 열한 권 정도의 책을 읽어냈다. 글쓰기도 시작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하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글 한 편을 써내는 일의 기쁨을 느끼면서 글을 쓰기 위한 통로인 브런치 작가 등록도 하고,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끼적여두며 몇 편의 글을 썼다. 작년 12월부터 다니던 헬스장은 6월 중순 정도까지 일주일에 4회 정도 꾸준히 다녔다. 학교 일을 하며 결심했던 일들을 해내는 나에게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면서 숨 가쁜 상반기를 보냈다.
이랬던 나의 일상이 깨어지기 시작한 것은 방학 직전 지독한 여름 감기가 걸리면서부터였다. 7월 초에 썼던 ‘회복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나에 대해 몰랐는지 보여 짠하다. 정말 지독하고 지독한 감기가 걸려 근 3주간 기침을 달고 살았다. 몸이 아프니 운동도 못 가겠고, 책 읽을 기운도 없고, 글을 쓰기 위해 화면 앞에 앉는 일조차도 귀찮았다. 그렇게 3주를 보내니 방학이 왔다. 여름 방학 시작 다음날 떠났던 남편과의 남해 여행은 즐거웠지만 에너지가 부족해 온전히 놀지 못한 느낌이었고 여행이 끝나니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기운을 내어 방과 후 수업을 끝내고 아기와의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근 1년 반을 준비한 이사를 할 날이 왔다. 아! 드디어 이사까지 다 끝냈다 싶어서 남은 방학 1주일을 알차게 보내보자 했는데, 갑작스럽게 1주일 동안 아기를 가정보육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니 방학이 끝나있었다.
개학을 하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사 전에는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야근도 꽤 자유로웠고, 모임도 자주 할 수 있었다. 이사 후에는 이사 온 집과 엄마의 집이 너무 멀어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아기가 태어난 지 32개월 만에 온전히 남편과 내가 아기를 책임지게 되었다.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는 기쁨을 누릴 정신도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아기 아침을 챙기고, 출근하고, 등원을 시키고, 일을 하고, 하원을 시키고, 놀이터에 가고, 저녁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목욕을 시키고, 재우는 일상에 뛰어들었다.
진심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나는, 이른바 ‘육퇴’라는 것을 하고 남편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힘들고,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너무 많다고. 내 인생은 과업 덩어리라며. 한번 ‘힘들다’라고 나의 상황을 명명하자, 내가 언제 제대로 쉬어봤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3까지는 당연히, 안 쉬는 거고. 스무 살의 나를 떠올려보니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 손 안 벌리고 용돈 좀 넉넉히 써보겠다고 했던 아르바이트들이 떠올랐다. 도서관 근로 장학생, 편의점 캐셔, 영화관 아르바이트, 학원 아르바이트, 공부방 아르바이트, 과외까지 뭐 아무튼 대학 생활 내내 계속 일을 했다. 임용 수험생 시절에도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는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했고, 오후 세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는 학원에서 정식으로 일을 했다. 남들 다 하는 출산 휴가도 달랑 3개월 썼고, 다시 일을 하겠다고 복직했다. 없었다. 온전히 쉬어 본 적은.
그렇지만 당장 쉬기에는 내가 학교라는 곳에서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 많았다. 다들 학교란 뭐 사람 하나 없어도 어찌어찌 잘 굴러간다고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내가, 당장 휴직계를 던지고 쉬지 못하는 이유는 내 나름 있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에 와, 나의 조회와 종례를 듣는 서른 하나 우리 반 아이들의 낭패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제야 조금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나에게 편안하게 농담을 건네는 아이들, 아무 볼 일 없이 쉬는 시간에 내 옆 자리에 와 수다를 떠는 아이들, 조금 귀찮아도 내가 이거 해보자 하면 그래도 따라와 주는, 서툴지만 그래서 귀여운 그 눈들.
그래서 일단 견디기로 ‘결심’했다. 거기에 내가 이미 애정을 갖게 된 아이들과 남은 시간을 온전히, 제대로, 잘 보내보자고 ‘다짐’했다. 이거 다 끝내고 제대로 쉬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나, 너무 힘들어’에서 벗어나 내가 버텨내야 하는 기한을 정하고, 어떻게 버틸지 정하고 나니 후련해졌다. 요즘의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평일 밤 1시간씩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켜고 같이 공부를 한다. 피곤에 절어 아기가 잘 때 잠을 자기 급급했던 내가, 그 산만한 아이들이 매일 밤 책상에 앉아 본인들의 과업을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같이 무언가를 해낸다. 수업 준비를 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이렇게 지금처럼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학기 초에 나의 힘듦의 원인이었던 이 아이들이, 한 해의 중반에 온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게 참, 우습고 귀엽고 기쁘다.
오늘 오랜만에 나간 독서 모임에서 동료 선생님이 '행복, 만족, 사랑'은 1차원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대화 과정에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문했지만, 이렇게 요즘의 나에 대해 내리 쓰고 나니 무언가 바꿔보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쨌든, 나는 남은 3개월을 이놈들과 같이 내 일상들을 견뎌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