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결정에 무례를 범하지 말라
나의 퇴사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새삼 '나한테 이렇게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았던가' 싶기도 하다. 그들은 대개 이렇게 운을 뗀다. "퇴사하면"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걱정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반쯤 협박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만둘 용기나, 다른 어떤 일에 열정을 쏟을 자신이나, 혹은 지금 존버하면서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답을 못한다고 비난할 생각도 없다. 나는 존버하는 삶도 존중하고, 그 또한 대단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다른 사람의 결정에다 대고 생각 없이 무례한 말을 하지 말았으면. 왜 퇴사를 결정하게 됐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다. 어차피 내 인생에 크게 관심도 없으면서, 제발, 예의라도 지켜줬으면.
그래서 오늘은 나의 퇴사 소식에 붙은 한마디들 "퇴사하면 블라블라"에 대한 반박을 해보고자 한다.
퇴사하면 힘들어져
나도 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없이 당분간 온전한 '나'로서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아무런 타이틀 없이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걸. 타이틀을 얻으려고, 머리가 새하얘지도록(실제도 새치가 심함 ^.ㅜ TMI 대잔치) 좌절하고 도전해서 지금의 타이틀을 얻었다는 걸. 그래서 쉽게 버릴 수 없었다는 걸. 나에게도 퇴사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정작 퇴사해보지도 않고 '퇴사하면 힘들어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알리가 없겠지. ^^ 퇴사만 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란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아요. ^^
모은 돈 없어지는 거 순식간이야
나도 안다. 그런데 이 명제에는 좀 더 정확히 반박하고 싶다. 엄청난 돈을 모은 건 아니지만, 내 기준! 이 정도면 불안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퇴사할 순간을 위해 돈을 모았던 것인가. 그리고!! 내가 퇴사한다고 수입 0원이라고 누가 그래? 모은 돈 마음대로 흥청망청 쓰겠다고 한 적 없는데. ㅎㅎ 그동안 일했던 짬바로 소소하게 용돈벌이 하면서 쉴 것이다.
소속 없이 그만두면, 다음 직장 구할 때 엄청 힘들 텐데...
나도 안다. 그런데 내 다음 스텝은 늘 '직장'이 아니었다. 경력을 살린 일을 하면 좋겠지. 사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정말 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 나는 '퇴사'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한 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면, 여기 머물러선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스텝에 대한 선택지를 늘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테니까. 여기가 아니면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자 수없는 새로운 문들이 보였다. 사업, 이직, 1인 크리에이터, 작가, 인디뮤지션 등등.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걸!
왜 꼭 퇴사 다음이 이직 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시길. 어차피 평생직장 따윈 없잖아.
여기처럼 조건 좋은데 없어. 이렇게 돈 많이 주는 데가 어딨어
나도 안다. 200% 인정한다. 돈 많이 주고 노동강도는 그리 세지 않은. 그런데, 사실 나는 최근에야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면서 야근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 노동강도가 약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건 생각 아니고 팩트. 토요일 점심께 갑자기 불려 나가서 새벽 1시까지 야근하고 일요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했던 그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면 가질수록 미친 듯이 일을 떠안고 있는 나를 발견했었던 기억.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요상한 공무원인 나는, 2018년 재계약을 하면서 연봉이 600만 원 삭감됐다. 한 달에 수입이 50만 원 줄어든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부조리한 곳도 없지. 편하게 살고 싶었다면 여기 남았을 것인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생선가게 좌판대에서 곧 팔릴 생선처럼. 그렇게는 싫다.
퇴사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음, 이건 잘 모르겠다. 내 주변에 퇴사를 하고 시간을 헛되이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체 뭐가 헛되다는 건지. 미친 듯이 일하지 않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허비'라는 게 화자의 기준이라면, 그건 니 생각이고. 니 기준이 그러면 니가 그렇게 살면 되는 것. 나는 쉴 수 있는 기회가 어쩌면 이제 마지막일 거란 생각으로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이 시간을 쓸 것이다. 두고 보아라.(흠좀무?)
결혼할 때 어쩌려고
아 이건 말할 가치가 없어서 패스. 와 나 참. 그래서, 본인은 결혼해서 행복하신가. 퇴사하면 결혼하기 힘들 거라니. 아 정말 노답대잔치.
퇴사하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그치만 적어도 쪽팔리게 살진 않을 거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신념을 버리면서, 나를 속이면서 살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제 걱정은 마시고 님 걱정이나 하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