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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Mar 31. 2019

부산엔 벌써 봄이 왔다

그리고 인생은 계속된다

1.

부산에는 벌써 봄이 왔다.

맥도생태공원 벚꽃길. 대저나 삼락은 비교도 안될만큼 웅장한 벚꽃터널을 만날 수 있다. 지금 부산은 벚꽃 절정이다.

2.

3월 마지막 주, 퇴사하기 한 달 전. 이 시간들을 내가 훗날 어떻게 기억할까. 정말 이 생활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믿기지 않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정말 그만두는 건가 싶다가도. 정신을 차려야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면 안 돼.


3.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나에게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고 평소 하지 않던 말을 건넨다. 아마 내 퇴사 소식을 들었겠지. 이번 주 제주도 출장을 다녀오면 고작 2주일밖에 시간이 없다. 다이어트해야 되는데 사람들이랑 밥도 먹고 술도 먹어야 하다니. 참, 속절없이 인생은 계속되고 있다.


4.

일기를 쓰지 못한 지난 2주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 충격을 받았던 오전이 지나가고, 그날 오후 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걸까. 사건사고의 연속,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사실 극복하지 못하더라고 생은 계속되는 것.


5.

그렇다. 인생은 계속된다. 내가 괴롭건, 힘들건, 아프건, 즐겁건 상관없이. 생은 계속된다. 겨울이 지나간 줄도 몰랐는데 (억울해) 봄이 와버렸고, (사실 봄을 맞을 준비가 안됐었는데) 벌써 부산엔 벚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2주가 참 아픈 시간이었다. 결국은 누구도 원하지 않던 결말을 맞았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 그것도 내가 일하던 팀에서. 아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내가 제일 먼저 떠난 줄 알았는데, 내가 제일 늦게까지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상사를 포함해 동료 7명이 이 직장을 떠나게 됐다. 마음이 아프지만, 솔직하게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들. 더 멋지게 살아야지.

2016년 송년회. 팀워크 최고였던 시절. 선물 교환식도 했었는데. 아련.

6.

나는 사직서를 써야 한다. 사직서를 재촉받았다.?. 의문.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것이다. 이기적일 것이다. 이기적인 내 마음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공백 기간 최소화? 음, 그래 알아서들 하시고 난 내 페이스대로 움직일래. 미안. 사실 안 미안. 내 퇴직을 처리하는 실무자를 곤란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사실은 분명히 해뒀다.


7.

부산엔 봄이 왔다. 나는 현 직장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싶다. 하루 3시간 이상 운전에 만보 이상 걷기를 거듭하며, 내 마지막 유작과도 같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마주한 부산의 봄은 찬란하다. 이 봄을 볼 수 있어서,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다신 없을 지금의 봄을 기록할 수 있어서.

을숙도 생태공원. 저물어가는 목요일.

8.

봄은 짧다. 그래서 놓치면 일 년 내내 후회한다. 작년엔 부산에서 벚꽃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후쿠오카 여행에서 - 4월 중순쯤이었지 아마 - 그때서야 아, 봄이었지, 벚꽃이 피는 계절이었지 하고 생각했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큰 복이다. 난 그때 무엇에 쫓기고 있었을까. 지금은 무엇에 쫓기고 있을까.


9.

주말 친구들과 가덕도 여행을 했다. 가기 전에 부산 벚꽃 명소인 맥도 생태공원에 들렀다. 삼락 생태공원은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어서 정말 별로다. 맥도 생태공원은 대저 생태공원보다 훨씬 벚꽃나무가 크고 벚꽃터널도 제대로다. 대저 생태공원엔 유채꽃이 한창인데, 유채꽃 키가 더 커야 사진이 잘 나온다. 4월 둘째 주가 사진 찍긴 제일 좋을 듯!

꽃망울이 참 아름다워, 아름다워
대저 생태공원 유채꽃밭
여자 셋이지만 못할 게 없는 우리. 숯불 피워 장어 구워 먹기. 돼지꼬리도 구워 먹었지.

10.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다음 일주일도 화이팅. 제주도 출장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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