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하루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내가 한때 사랑해마지 않았던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일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늘 일상을 떠나 여행하고 싶어 하던 나에게 그가 했던 말이다.
그런 때가 있다.
잊고 있던 누군가의 말이 머리를 스치며 별안간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때.
일상이 무너지는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됐다. 그 말의 뜻을.
퇴사 후 나의 일상은 평화롭다.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당당히 회사를 때려치웠지만, 그래도 불안하겠지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무슨. 그런 불안과 걱정은 없다. 그냥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새로운 일들에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나의 결정으로 맞이한 평화로운 일상.
아침에 일찍 눈을 떠도 억울하지 않은 기분.
나에겐 이제 주말이라는 개념은 없다.
그저 나의 하루일 뿐이다.
퇴사 후 딱 1번 늦잠 잔 것을 빼곤, 매일 아침 출근하던 그 시간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를 틀어두고 스트레칭과 모닝요가를 한다. 개운하다. 어깨 통증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그리곤 16시간 굶주린 배에 음식을 좀 채워주고(주로 사과나 요거트, 방울토마토 등), 수영장으로 향한다.
강습은 10시부터지만 수영장이 엄청나게 북적이기 때문에, 9시 15분쯤 집을 나선다.
요즘 내 인생의 낙은 수영이다. 수영 배우려고 시력교정 수술을 미뤘다. 정말 잘한 일이다.
오전 10시 수업이기 때문에 할아주머니들과 같이 수업을 받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젊은 사람도 많았다.
모든 배움이 그렇듯이 선생님이 '옳지!'라고 하면 정말 신난다.
강습받고 난 후엔 그날 배운 걸 꼭 복습한다. 마지막 시간엔 자유형 팔 동작을 배웠는데, 발차기와 팔 동작을 같이 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도 집중해서 하면 할 수 있다.
일요일은 강습이 없는 날이지만, 자유수영은 할 수 있어서 어제도 수영을 했다.
처음으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발차기가 점점 몸에 익고, 팔 동작도 어느 정도는 연습이 된 것 같다.
요가와 수영으로 채워진 아침시간은 정말,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8월에 바디 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는, 다이어트 식단을 챙겨 먹는다.
닭가슴살을 시즈닝 해서 에어프라이어로 구우면 정말 맛있다.
닭가슴살과 단호박은 항상 구비해둔다. 단호박을 삶는 건 좀 귀찮은 일이다. 칼질이 너무 고되다.
때마침 집 밑에 야채와 과일을 싸게 파는 가게가 생겼다. 싸서 별 기대 안 했는데, 가격 대비 너무 맛있잖아? 직거래로 산지에서 바로 가져오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 팔 수 있다고 한다. 럭키.
오후엔 가벼운 홈트레이닝을 하고, 저녁엔 걷기를 한다. 가끔 오후에 자전거도 탄다.
술을 줄였더니(한 80% 줄인 듯) 피부도 좋아졌다. 화장하는 날이 줄어드니까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스트레스가 없으니 술을 찾는 일이 줄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꾸준히 창업 관련 오프라인 교육을 신청해서 들으려고 한다.
4월에 1개(사회적 경제기업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5월에 3개의 교육을 신청해뒀다.
또 언니가 추천해준 팟캐스트, 클래식 클라우드 '김태훈의 책 보다 여행'을 틈틈이 듣는다. 정말 재밌다. 다른 팟캐스트를 꾸준히 구독하지 못했던 이유는 잡담이 많아서. 근데 그 잡담이 지들만 재밌고 난 하나도 재미가 없길래. 김태훈의 진행은 정말 깔끔하다. 전문가 패널이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하면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서 청취자의 이해를 돕는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말만 하는, 이 시대에 아주 적합한 팟캐스트다. 길이도 마음에 든다. 20분에서 30분 분량.
레오나르도 다빈치, 괴테, 삶에는 와인이 필요하다 등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삶에는 와인이 필요하다 편을 듣고 오늘 와인 입문서를 살 생각이다. 좋아만 했지 와인은 1도 모르기때문에. 목표는 라벨 읽는 법을 배우는 것. 그거면 족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꾸준히 공부를 하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면 집중력인 것 같다. 나는 온통 회사에서 일어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외의 일에는 잘 집중하지 못했다. 온전히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매 순간 집중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나에겐 이 시간이 참 감사하다.
잠들 땐 미드를 영어자막으로 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택한 미드는 '커뮤니티'. 3회까지 보곤 명작이라고 생각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에피소드 하나당 2-3번은 반복해서 보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4번도 봤다. 특히 아베드가 영화를 만들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린 그 에피소드가 현재까지 내 최애 에피소드다. (왓챠 플레이 고마워요)
퇴사가 가져다준 행복은 생각보다 컸다.
무엇보다 나의 '일상'이 즐거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설레고, 힘든 운동을 해도 웃음이 난다.
그건 내가 충실한 일상을 보내며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회사에서 충실하게 보내도 보이지 않던 희망이었는데.
지금은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없다.
그냥, 그저, 나의 하루하루를 이렇게 충실히 보내고 어떤 목표에 도달했을 때
자유롭게 떠날 예정이다.
충실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주간일기 끄읕-
P.S : 퇴사와 동시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독립했지만, 주말은 본가에서 보내고, 주중에도 필요하면 만난다. 엄마가 원하는 참숯불가마도 가고, 생태공원에서 돗자리를 펴두고 누워서 과일도 먹고. 아빠에게 반찬도 만들어주고. 힘든 날 힘들다고 말하기 싫어서 짜증냈던 내가 생각나서 미안하지만,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