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을 것 같지만 사진은 찍고 싶어
제주도는 여섯 번째입니다. 겨울에 가본 경험 전무. 봄이 두 번 여름이 세 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스노클링에 빠진 뒤로는 제주도의 사계절이 여름이었으면 했고요. 3박 4일 제주도 여행이면 3일을 물놀이를 하는 저였습니다.
때문에 겨울 제주도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따뜻하겠지 라는 환상. 패기 넘치게 코트 달랑 하나 입고 제주로 향했습니다. 하필 영하 7도의 날씨가 이어진 주말이라서, 호된 추위에 겨울 제주의 얼굴을 각인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퇴사와 동시에 이직을 앞둔 동료 후배와 (사실 거의 친구) 함께했는데, 예쁜 사진을 많이 남기고 가능하다면 영상도 찍으려고 했었어요. 야무지게 카메라와 삼각대까지 챙겨서요. 코트 주머니 밖으로 손을 꺼낼 수 없는 날씨인 것도 모르고. '많이'는 실패한 것 같지만, 겨우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어요.
혹한의 추위가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주머니 밖으로 손을 꺼내, 셔터를 눌렀던 그 순간이 자꾸 생각나거든요. 마치 내가 퇴사를 결정한 것처럼. 퇴사 후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멋진 순간들을 내 인생에 새겨야지 하면서요.
얼어 죽을 것 같지만 사진은 찍고 싶었던 그 순간, 그 기록을 공유합니다.
우리 새별오름은요. (애잔) SNS에 인생샷 성지로 이름을 알렸던 곳인데요. 실상은 아주 가파른 경사를 몇 분인지 모를 정도로 숨 가쁘게 올라야 하는 오름입니다. 한 30분쯤 올랐던 걸로 기억해요.
진짜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는 구간부터는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SNS에 유명세를 탄 새별오름 사진만 봐서는, 이런 경사가 있다는 정보를 모를 수밖에 없지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인지 구두를 신고 오신 분들도 꽤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꼭 운동화 신고 가세요. 경사가 가파른 만큼 오름 치고는 높은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서부 내륙 쪽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용눈이오름, 군산오름 이후 세번째 오름인데 올라가는 길이 제일 힘들었어요.
얼어 죽을 것 같던 날씨에도 사진을 위한 열정으로 나홀로나무로 향했어요. 나홀로나무는 정말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더군요. 어쩜. 외로워 보이지만 외로울 것 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의 공간. 열려있지만 닫혀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호기롭게 도착해 삼각대를 펼쳐서 겨우 3장 찍었어요. 삼각대 다리 하나 펴고 주머니에 손 한번 넣고, 다시 다리 하나 펴고 손 호호 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팀이 있었는데, 우리와 마주치자 그녀들은 이런 말을 했어요. (그 팀은 사진을 위해 노오란색 튤립과 새하얀 원피스를 입었더라고요. 진짜 존경합니다.)
"여기 잘 안 나와요. SNS에 속았어요."
아, 웃프지만 일단 왔으니 저희도 좀 찍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탄생한 귀한 사진입니다. 전 마음에 들어요. 그날의 공간, 분위기, 우리의 기분까지 다 느낄 수 있는 한 장이라서요. 이런 사진은 흔치 않아서요. 제 동행의 손이 주머니 속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채로 찍힌 것도 너무 재밌어요. 그 손이 토마토색과 같은 것도요.
글을 쓰다 보니 추운 곳만 골라갔다는 생각도 드네요.(ㅋㅋㅋㅋㅋ)
이번엔 신창풍차해안도로인데, 여기도 인생샷 명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상하리만큼 한적했던 그곳. 너무 추웠어요. 하지만 여름 제주도에 꼭 어울리는 장소니까, 겨울은 빼고 삼계절에 가보세요.
켄싱턴 제주 호텔에서 아침 수영을 했던 순간에 '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사진으로 픽했습니다 :)
기회가 된다면 꼭 겨울 제주에 가보세요.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여행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