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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별 Feb 05. 2019

우연의 효과

끼어드는 우연 몇 조각은 사진 속에 남는다. 플레어 몇 조각과 빛망울, 무지개와 비행운, 비눗방울 부는 아이. 가장 아름다운 꿈은 눈을 떠도 보이는 꿈. 현실에는 드문 색채들이 사각형 안에 뒤섞인다.


버스비가 없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네를 돌며 셔터를 눌렀다. 공원의 시계도, 철거 전인 건물도, 오래도록 나를 숨기려 했던 학교도 렌즈 너머의 세상에선 햇살을 먹고 다정한 표정이었다.


이 다정한 세상에 당신도 데려오고 싶었다. 셔터 소리가 들리면 잘 웃지 않는 당신이라도 내 쪽을 보며 웃어버릴 것 같아서 더 그랬다. 당신 앞이면 항상 망그러지는 입 때문에 늘 곤란했지만 조금의 상상은 괜찮을 거다.


투명한 하늘에 담겨 흔들리는 풍경을 담으며 제철은 내가 어디에 있든 무사히 착륙한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를 가두고 며칠을 울었던 눅눅한 방에도 커튼 걷힌 자리에 도착하던 계절의 빛. 순수한 위안이었다. 누군가의 속내 같은 건 전혀 담겨있지 않은 투명한 안도감.


꽃과 나무에게, 혹은 인간에게 당도할 몇 번의 제철 동안에도 영원히 오지 않을 우리의 제철을 상상한다. 분명 꽃이 많이 피어서 예쁠 거다. 햇볕은 따뜻할 거고 더는 내 눈과 뺨이 젖어 있지 않을 거다.


우연처럼 당신이 내게 웃었으면 좋겠다. 우연이 개입할 일말의 가능성에 기댄 채 비틀거리며 오늘도 사랑을 관두지 않는다.


들이키면 가슴이 뻐근해지는 바람은 당신을 스치고 내게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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