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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May 13. 2016

한겨울, 양말을 뚫고 나온 발가락

6500km를 달려 만난 사람들_첫 번째


얼굴까지 목도리로 꽁꽁 싸맨 내 모습이 미안해질 때가 있다. 카메라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손과 손가락이 차갑게 굳어버려도, 어색하게 서 있는 렌즈 속 인물들을 보면 괜한 미안함에 움찔거릴 때가 있다. 오늘이 참 그러하고 지난 5개월이 참 그러했다.

2013.12.11



서울에서의 마지막 취재였던 그날,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손을 데워줄 장갑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인턴이었던 나는 대리님과 함께 눈길을 달려 북쪽으로 향했고, 눈 쌓인 언덕 너머의 골목에서 그 집을 찾았다.

 


빨랫줄 가득 양말이 걸려있던 대문을 지나 찬 기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는 궂은날에도 와줘서 고맙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푸셨고 나는 작은 노트에 메모를 했다. 손님이 왔는데 커피라도 한 잔 타 주겠다며 물을 끓이시던 할머니. 프림이 없어서 설탕을 많이 넣어주시겠다며 커피 알갱이에 갈색설탕을 잔뜩 녹여 뜨끈한 커피를 만들어주셨다. 마시기 힘들 정도로 달디 단 커피를 손에 들자, 더 크게 손사래 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대리님의 홀짝이는 속도에 맞춰 나도 홀짝홀짝 따라 마셨다. “커피가 조금 다네요. 하하” 커피맛을 묻는 할머니께 대리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 사이, 교복 입은 손자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수줍많던 그 아이는 우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장 카메라 앞에 섰다.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나는 그 아이를 렌즈 너머로 봐야 했다. 렌즈 뒤에 숨은 내 모습은 어땠을까. '오늘 처음 만난 사람', '포즈를 요구하며 나를 카메라에 앞에 세우는 사람', '가족사, 가정형편 모든 걸 알고서 도움을 주러 온 사람'. 뭐가 됐든, 그 아이의 웃는 모습보다 조금은 서글픈 표정을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겐 더 중요했다.


그렇게 수십 아니 수백 번 셔터를 누른 뒤에야 양말이 걸려있던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작은 마당에 네 사람이 섰다. 이번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담는다. 두 사람의 자리를 정해주고 셔터를 누르려던 찰나에 아이의 발끝에 시선이 집중됐다. 엄지발가락 하나가 양말을 뚫고 나와 매서운 겨울바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조금 민망해했고 할머니는 양말이 낡았다며 허허허 웃으셨다. 대리님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발이 시리겠다며 얼른 찍고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장갑을 끼고 셔터를 누르던 내 두 손이 부끄러웠다. 두툼한 겨울 외투에 장갑을 끼고서도 얼른 퇴근해 몸을 녹일 생각만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추위를 핑계로 망각하고 있었다. 짧은 모금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왔던 일이 내가 아닌 그들을 위한 일이었음을, 그깟 추위에 잠시 망각해버렸다.




[6500km를 달려 만난 사람들] 첫 번째_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는, 모 기업의 복지재단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기부사이트의 모금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했고,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지만 지난 이야기를 풀어낼 날을 기다렸다. 짧디 짧은 모금 사연으로만 남겨두기에는, 숫자만 강조된 자소서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렌즈 너머로 바라본 모습과 두 눈에 선명하게 남은 기억, 그날의 공기와 그들의 목소리, 눈을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해왔던 작은 노력들. 모든 것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나날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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