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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Nov 28. 2016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나라가 소란스러울 때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래서 늦은 휴가를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핀란드에서 종종 뉴스를 볼 때면 이 사태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했다. 이 시국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떠오르고 그렇게 어김없이 흐지부지 종결되려나 싶은 생각에 크게 유념치 않았다. 또한 첫 해외여행을 방해 받고 싶지 않기도 했다. 같이 간 친구들의 얘기가 정치로 흘러갈 때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기억도 안나고 솔직히 멍청해졌다. 언론고시를 끝내며 시사이슈는 더 이상 관심사로 두지도, 둘 수도 없었다. 그 만큼 스스로가 참 무심했다.


핀란드를 여행하며 부끄러웠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아마 같이 간 친구들도 기억할 것이다.) 핀란드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핀에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버스 스크린에 BBC 뉴스가 떡하니 떠있었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뉴스였는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발부된 줄 알고 깜짝 놀라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먼 이국에서 들리는 뉴스가 참 부끄러운 소식이라 안타까웠다. 두 번째는 에스토니아 탈린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트램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옆에 있던 남자가 다가와 보조배터리를 잠깐만 빌려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하자 president corruption에 대해 물었다. 깜짝 놀랐다. 우리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 아니구나라고 느낌과 동시에 그가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름에 서울에 갈 예정이라는 그에게 동기는 참 습하고 더울 것이라며 얘기를 해줬다. 지금와서야 하는 얘기지만 언젠가 그가 올 여름에 한국의 많은 것들이 바껴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핀에어(Finnair) 공항버스 스크린에 떴다. (출처 : 윤지원)

어느새 휴가는 끝났고 돌아가는 시국은 여전히 위태롭기만 하다. 촛불집회를 아직 나가진 않았지만 이 모든 책임에 변명과 거짓말,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욕지기가 올라오곤 한다. 더럽고 추악해서, 뉴스를 보다가 무심코 입 밖으로 욕이 튀어 나올 때도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에 독재 정권의 장막에서 펼쳐졌던 정치 놀음이 2016년 오늘의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도 참 죄스럽고 비참하다.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려했던 사람들도 한심하고, 그들의 음모가 이리도 잘 먹혀들어갔던 오늘날 대한민국의 허술한 국정 시스템 또한 안타까울 따름이다.


Valup up 캠프에서 쓴 캘리그라피. 사실 의도하고 쓴 문구는 아니다.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보면 일제강점기의 처참한 시대 속에서 시가 쉽게 쓰여진다는 사실에 작자는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편치 않은 시국 속에서 단지 분노의 글귀만 여과없이 내뱉는 스스로가 부끄럽다. 다만 이렇게라도 응원하고 싶고 누군가는 반드시 국민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4퍼센트 지지율도 책임이고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판단력이라면 답도 없지만 말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촛불들은 시대를 넘어온 이 부패의 악순환을 무조건 끊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다. 최소한 푸른 지붕 집에 있었고, 지금도 있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평화집회가 지나간 자리는 조용했고 깔끔했다. 우리의 시민의식을 보며 이 위기가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겠다라는 작지만 큰 희망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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