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성 Apr 19. 2019

가혹한 계절, 4월

베이지색 코트를 하나 샀다. 요즘때 입기 좋은 안감으로 가벼우면서도 얇다. 길어야 2~3주 입다 보면 금세 여름이 다가올 것이다.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가혹한 계절, 봄의 4월. 지난주 추운 날씨에도, 만개했던 벚꽃도 맑은 하늘도 이내 숨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맘껏 이 시기를 즐겼던 때가 있었나 싶다. 학생 시절에는 취업 원서를 쓰기 바빴고 시험 준비다 뭐다 온전히 느껴본 적이 없는 시기다. 올해도 뭐, 축제라는 이름의 일이 던져졌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봄꽃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옅은 미소가 보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4월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느끼지만 느껴보지 못하는 4월, 올해도 이렇게 흘러간다. 푸르른 5월을 지나 6월의 땡볕이 느껴질 때면 벌써 일년의 반이 지난 시기다. 이렇게 보일년은 참 다.


가면을 쓴 채로 4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차마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웃어야 했고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다. 답답한 관계를 매듭지지 못해 결국 질질 끌려가다가 요원해지는, 바보 같은 짓을 그렇게 반복하고 있다. 4월은 그래서 답답하다. 연초의 다짐은 이내 시간에 묻혀 버리고 달라진 거 없는 일상이 스멀스멀 움트는 시기다. 일이 정신없어서, 귀찮아서, 스트레스 받아서라는 그럴싸한 변명들을 붙잡고 그렇게 여름으로 내달리고 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화를 냈다가도 이내 수그러지고, 다시 미친 듯이 웃다 보면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그 날 하루만 버티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끝나는 듯했다. 글쎄, 이거 괜찮은 걸까.


'힘내세요, 너무나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파이팅해요.' 변하지 않는 일상을 보듬어 주는 건 서로가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들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명확하면서도 원론적인 답을 주지는 못한다. 나 역시도, 그들도 알면서 그걸 알기에 오늘도 버텨본다. 무너져 본 적이 없으니까. 무너지는 것이 두려우니까. 그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건 서로에 대한 위로이자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차마 울지도 못하는 너란 놈, 책임감에 짓눌려 호기 있게 반항 한 번 못하는 너란 놈, 속시원히 관계도 끊지 못하는 너란 놈! 무엇이 그렇게 어렵고 두려운 것일까. 쉽지는 않은 일인 건 분명하지만 막상 터트린다면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해방감이자 자유랄까.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다는 이야기가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체력이나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숫자는 하나씩 올라가는데 너는 여전하다, 오랜만에 봐도 그대로네라는 무색무취의 낙인이 찍혀버릴까 두렵다. 그렇다. 만만히 보이는 거, 싫다는 말이다. 때로는 철없는 어른이지만 그래도 개성 있고, 도통 특이하지만 지혜로운 총기가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던 일상의 변화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를 위한 가면도 분명 필요하지만 최소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드러내기를 망설이지는 말자. 이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우선 이 좋은 계절, 4월을 그냥 흘러 보내는 것부터가 잘못일 것이다. 봄에 어울리는 방탄소년단의 신보를 괜히 흥얼거려본다. 익숙하지만 새롭기만 한 그 계절 4월이 이렇게 또 흘러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