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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Jun 12. 2019

연패

응원하는 야구팀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려니 넘기려 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일상의 피로감까지 더해져서 괜스레 무기력해진다. 야구를 보면서 퇴근을 하니 그 날의 야구 스코어는 때때로 그 날을 느끼는 점수가 된다. 짜릿한 역전승을 한 날은 평점 9.0이다. 회사에서나 다른 속상한 일이 있었어도 그래, 금세 잊을 수 있다. 반대로 무기력하게 질질 끌다가 역전패라도 당한다면 그 날은 평점 5점도 안 된다. 그 날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결국 뒤끝이 안 좋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요즘이 그렇다. 하루에 느끼는 감정도 썩 좋지 않은데 야구까지 말썽이다. 딱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타선의 방망이는 침묵하고 헛스윙만 날리다가 연장가서 역전패. 갈팡질팡 헤매다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요즘의 나.


골프를 배워보라는 선배의 말에 솔깃했다가 이내 시들해져서 비행기표를 뒤적이다가 갑자기 예전에 즐겨보던 개그 영상을 찾아본다. 갈팡질팡의 끝은 익숙한 걸로 귀결된다. 뉴트로(Newtro)라는 트렌드에 과거의 감성이 다시 뜨는 요즘,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들은 죄다 어릴 때의 추억과 연관된 것들이다. 관성의 법칙이 너무나도 잘맞는 사람이라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보던 것만 보고, 웃던 것만 웃고, 재밌던 것만 재밌다. 길도 가던 길만 가고 어딜 가든 새로운 루트는 너무나 낯설어한다. 그것이 틀린 길이 아님에도 낯설고 불안한 현재보다는, 조금이나마 스스로 때깔 좋고 영광스러웠던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을 낭만이라는 미명 하에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영화 '기생충'을 봤다. 뻔하디 뻔한 계급 우화 같으면서도 묘하게 자꾸 곱씹게 한다.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마냥 착한 인물 완전한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냄새로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이와 어느새 집주인 마냥 그 집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사투는 애처롭다 못해 애잔하다. 선하고 악함이 아닌 누구든 '박 사장'이 될 수 있고 '기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방식이 우연에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샌가 설득되고, 그들의 행동이 차츰 이해가 되다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흔한 액션신 하나 없는, 그것도 맑은 한낮에 벌어지는 이 잔혹동화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낯설으면서도 익숙한 듯 공감되는 이야기, 이런 게 디테일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2019년도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다. '디테일'이 없다. 상반기에 무슨 스토리를 만들었냐 하면 할 말이 없다. 일상적인 삶에서 무슨 그런 드라마틱함을 찾냐고도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단순히 어떤 사건이나 큰 변화를 억지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집-회사-약속-집' 무한 사이클 속에서 제풀에 지쳐 잠들다 보면 끝없이 침전하는 것은 나 자신이요, 딱히 건강에도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삼십 줄에 접어드니 사실 그렇다.) 체력도 바닥이고 몸무게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니 더욱더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평소와는 조금은 다른 일상을 찾고 경험해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그런 것,  그게 정확히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경험치를 쌓다 보면 그것이 또 다른 변화의 발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던 영화 기생충 속 기택의 대사가 머리를 친다. 묘하게 맞는 얘기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처절한 연패 끝에 쓰디쓴 비극으로 끝이 났다. 2019년 나의 '연패'도 마찬가지다. 디테일로 채우지 않으면 결국 또 그렇게 '노답 시즌'으로 끝날지 모른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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