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 죽겠네. “
친구와 도쿄여행 4일 차, 눈을 뜨자마자 친구에게 들으라는 듯 내뱉었다. 아차 싶었지만, 3일 동안 패키지 투어 같은 일정을 쫓아다니느라 스트레스는 수동공격이 되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타인과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북유럽을 3주 동안 홀로 여행한 스물두 살을 시작으로 혼자 낯선 풍경을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하염없이 걷고, 길을 잃고, 무용한 것을 오래 바라보고, 끝내 풍경의 일부로 녹아드는 것이 나의 여행이다.
최적의 동선과 효율을 중시하는 친구와의 여행은 여행인지 미션 수행 중인지 헷갈렸다. 디즈니랜드에서 시간이 아깝다며 풍경도 보지 않고 어플만 쳐다보며 놀이기구를 예약하기 바쁜 친구를 보며, 운동화끈 묶을 시간이 없어 헐렁한 신발을 끌고 다니느라 발이 퉁퉁 부은 나를 보며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터지기 직전 풍선을 부는 아슬아슬함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는 오늘 오전 한국으로 돌아가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하루 반이 생겼다. 후지산이 보이는 해변 마을에 가서 괜히 기차를 타보고, 모래사장을 끝까지 걸으며 반짝이는 검은 모래를 바라봤다. 꼭 가야 한다는 전망대는 가지 않았지만 골목을 헤매며 풍경을 어루만졌다. 다시 도쿄 시내로 돌아와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샀다. 근사한 재즈바를 예약해 패티 오스틴의 라이브 공연을 봤다. 효율적이지 않지만 무용한 하루가, 찬란했다.
유용함이 나에겐 스트레스구나. 나를 생각해 좋은 걸 보여주려던 친구의 마음에도 나는 홀로 길을 잃는 하루가 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무용함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외롭지만 충만하다. 어제보다 더 많이 돌아다녔는데 내일 아침엔 피곤해 죽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외롭고 자유로운 걸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