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명이 머무는 순간(2부) : 출가

포트럭 소설집

by 포트럭

어머니의 사촌언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족을 책임져 줄 만큼 가깝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 하셨다. 한동안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일저일 하시며 직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큰아버지 덕분에 편하게 사업할 때와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거의 매일 밤늦게 들어 오셨지만 빈손이었다. 표정은 늘 어두웠다. 일주일, 이주일,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의 사촌언니도 우리를 곱게 보지 않았다. 어머니도 계속 사촌언니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면서 버틸 수는 없었다. 사촌언니의 식당에서 주방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항상 가정부가 주방일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서툴렀다. 사촌언니는 어머니가 실수할 때마다 핀잔을 주었다. 시집와서 쭉 사모님 소리만 들으며 곱게 살아오신 분이 얼마나 창피스럽고 힘들었을까. 미국 생활에 정착하지 못한 아버지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코스타리카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바로 짐을 쌌다. 버지가 떠나기 전날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심하게 다퉜다.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하셨지만 아버지는 자기 한 몸도 버거워 하셨고, 결국 나와 어머니를 두고 떠났다. 그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나의 원망은 시작됐다. 아버지가 떠난 후로 나와 어머니에 대한 사촌언니의 천대는 심해져 갔다. 사촌언니는 어머니를 식모처럼 부렸고 나와 어머니는 눈칫밥을 먹으며 불편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고등학교 1학년 사춘기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영어를 못하니 학교에 가도 왕따였다. 나는 미국 애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레슬링을 배웠다. 동양에서 온 꼬마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체격을 키워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생길 때마다 운동에 몰입했다. 슬링을 체력에 자신이 생기자 미식축구를 시작했다. 미국 친구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영어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 그 시절 운동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쯤 아버지가 오셨다. 2년 만의 일이다. 나와 어머니를 버려두고 떠나 소식도 없다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보기 싫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이니 대학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반항심에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는 대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던 아버지는 노발대발 했다. 나는 거칠게 반항했고 아버지의 손이 올라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매질은 한참 후에야 그쳤다. 그날 나는 혈뇨가 나올 정도로 맞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포트럭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20년차 직장인이 알려주는 회사생활 A-Z와 직장인이라면 알아야 할 기본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94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