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 소설집
여느 때처럼 세탁소를 가던 길이었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세인트루이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자연을 즐기고 싶어 평소 가던 도로가 아닌, 오솔길 산책로 쪽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그런데 저 멀리 길 한가운데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웅크리고 누워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기 위해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 지금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마음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사람이 아닌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수염을 멋지게 기른 중년의 이탈리안 남성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츄리닝 복장을 한 것으로 보아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모양이다. 몸을 흔들어 깨워봤다. 미동도 없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숨이 멎었나? 심장에 귀를 대보니 약하지만 미동이 느껴졌다. 이 상태로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 큰일날 것 같았다. '근처 상점이나 주택가까지 달려가서 911을 불러 달라고 할까? 아니야, 그 시간에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
고등학교때 배운 응급구호 CPR(심폐소생술)이 생각났다.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이야. 실제로 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순서를 생각했다. '양손을 포개 손바닥을 가슴뼈 아래에 대고, 팔꿈치를 곧게 펴 몸무게를 실어 강하고 빠르게 30회 압박한다. 그런 다음 머리를 젖혀 기도를 확보하고, 코를 막고 입을 밀착해 숨을 불어 넣는다.' 나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서늘한 가을 날씨에도 온몸에 땀이 났다. 그렇게 수회 반복하자 기적처럼 의식이 돌아왔다! '이제 됐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자를 나무에 기대 앉히고 내 겉옷을 덮어 주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얼른 가서 911을 부를게요." 남자는 힘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세탁소 가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가는 길에 공중전화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911에 전화를 걸어 남자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남자의 옆을 지켰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남자를 태워 병원으로 이송했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나는 평소보다 늦게 세탁소에 도착했고 주인아저씨에게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저씨는 정말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의지할 사람 없는 타향에서 혼자 생활하는 내게 아저씨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한국에서 사업 실패 후 가진 것 없이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 건너와 억척과 근면으로 자리를 잡은 분이다. 그의 성실함은 세인트루이스의 까다로운 부촌에서도 인정받아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 매주 아침 빠지지 않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자상한 가장이다. 아저씨를 볼 때마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난 아버지가 교차되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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