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 시간 편
어릴 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였지만,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감정을 숨겨야 할 때가 많다. 화가 나도, 흥분이 돼도 계속 참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 문득 섬뜩해졌다. 이건 아니지... 그래서 나는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영화를 본다.
작정하고 슬픈 영화, 유치할 만큼 웃긴 영화, 무서운 공포영화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슬픈 영화가 보고 싶어져 인터넷을 검색해 한편 골랐다. 20살 청춘 남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0살의 미대생 타카토시는 전철에서 한 여자를 발견한다. 마치 운명처럼 첫눈에 들어온 그녀. 타카토시는 그녀가 내리는 정류장에 무작정 따라 내리고 그녀에게 핸드폰 번호를 물어본다. 핸드폰이 없다는 그녀.. 거절당한 걸까? 그런데 그녀는 묘한 말을 남긴다.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
미대생인 타카토시는 그림 과제를 위해 동물원을 찾는다. 기린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카토시에게 에미가 나타난다. "교실에 걸릴 그림이네."
뜬금없는 에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에미를 만난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는 타카토시. 둘은 동물원에서 즐거운 데이트를 한다.
동물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호수 앞에선 둘.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어릴 적 다섯 살 때 호수에 빠졌던 얘기를 들려준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그때, 한 여자가 물에 빠진 타카토시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타카토시는 매일마다 에미를 만나며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에미는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타카토시는 그런 에미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애쓰지만 문득문득 어두운 표정의 에미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타카토시가 자취방을 옮기는 날, 에미가 이삿짐 싸는 것을 돕기 위해 찾아온다. 그리고, 타카토시의 짐에서 박스를 꺼낸다.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박스에 얽힌 얘기를 들려준다. 10살쯤 되었을 때, 한 여자가 찾아와 자신에게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이사를 마친 후 에미는 타카토시를 위해 카레 요리를 준비한다. 에미의 카레는 어릴 적 타카토시의 엄마가 만들어 주던, 타카토시가 좋아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에미에게 비법을 묻자, 초콜릿을 넣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어느 날, 우연히 에미의 메모를 발견한 타카토시. 메모에는 내일 날짜로 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적혀 있다. 그리고 다음날, 신기하게도 메모에 적혀 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너무나 놀란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메모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에미는 놀라운 얘기를 꺼낸다.
세른 다섯살의 에미는 동물원에 갔다가 우연히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게 인연이 되어 에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게 되었고, 둘은 5년마다 우연히 만나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20살이 되는 해, 둘은 30일간 만나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얘기다.
믿지 못하는 타카토시에게 에미는 10살 때 받은 박스의 열쇠라며 건넨다. 그때 박스를 준 사람이 바로 30살의 자신이라는 것이다. 박스를 열자 일기장이 있다. 일기장에는 첫 만남부터 30일까지의 일들이 상세히 적혀 있다. 29일째 되는 날, 둘은 타카토시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사진을 찍게 된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사진이 박스에 같이 들어 있다.
이제 타카토시는 왜 에미가 항상 슬퍼 보였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에미를 만나 1일, 2일째가 되는 날이 에미에게는 헤어지는 날, 헤어지기 전날이었던 것이다.
29일째 되는 날, 타카토시를 만난 지 이틀째인 에미는 아직 타카토시가 어색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할 타카토시를 배려해 밝게 웃으며 친근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에미의 마음을 아는 타카토시는 더 슬퍼진다.
둘은 타카토시의 집을 방문해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 타카토시의 엄마는 타카토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카레를 준비한다. 그리고 에미에게 비법을 알려 준다. 카레에 초콜릿을 넣는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박스 속의 사진처럼 사진을 찍는다.
에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기 위해 타카토시는 에미를 자신의 화방으로 부른다. 화방에 앉아 에미를 기다리는 타카토시. 문이 열리며 에미가 들어온다. 자신을 만나는 첫날일 에미를 위해 타카토시는 겨우 겨우 울음을 참는다.
20살의 타카토시를 만나는 설렘과 행복 가득한 얼굴의 에미가 타카토시의 화방으로 들어온다.
타카토시를 만난 지 하루밖에 안돼 아직 어색하지만 타카토시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에미는 일부러 더 친근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타카토시의 엄마로부터 타카토시가 좋아하는 카레의 비법을 전해 듣고는 언젠가 타카토시를 위해 카레를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한다. 타카토시의 가족과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소중한 타카토시와의 시간들을 일기장에 적는다.
타카토시와의 마지막 날이 된 에미는 타카토시와 함께 했던 거리, 자취집 등을 둘러본다. 그리고, 타카토시와의 마지막을 위해 전철에 올라탄다. 그리고 타카토시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자신이 내리자 뒤따라 오는 타카토시. 그리고 자신에게 수줍은 듯 말을 건네는 타카토시에게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기쁜 모습으로 뒤돌아 가는 타카토시를 보며 에미는 그만 눈물을 터트린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슬픈 청춘 남녀의 이야기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였습니다.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과거 나와 인연이 있었고, 지금의 만남도 한정된 시간 동안만 유지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과거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정된 시간만 만나게 되는 건 일견 맞는 것 같다. 초등학교 짝꿍, 고등학교 친구들, 졸업한 이후로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못 볼 것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성의를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겠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특히, 주위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