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9델포이 신전에 가면 gnôthi seautón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인용해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외형적인 내 모습도 나이고, 내가 하는 생각도 나입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도 나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발현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공정과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알고 봤더니 그 커피회사는 아프리카에서 미성년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해 원두를 채집합니다. 그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여전히 공정과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인가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에 대해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내막을 알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어렸을 적 버려져 아버지와 어머니를 몰랐습니다. 성인이 되어 어떤 나라를 걷다 우연히 길에서 노인을 괴롭히는 자를 죽이게 되는데, 그 일로 영웅대접을 받게 되어 그 나라의 왕의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마침 그 나라는 왕이 죽어 없었고 왕비만 있어서 그 왕비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을 괴롭혔던 자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그 나라의 왕이었고, 왕이 죽어 혼자 남게 된 왕비가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괴로워하며 자신의 두 눈을 찌릅니다.
진짜 나를 대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까지 알아야 하니까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반추하고 사색하는 지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런데 학창 시절 우리의 교육은 상급학교 진학, 취업, 경제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풍요로울 때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회사/사회에서의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자녀들과도 거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외롭고 우울할 때가 많아집니다. 우리가 인문학에 대해 공부를 했다면 자신을 찾고 돌아보는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헤아리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입니다. 인문학 강좌에 가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문학의 중요함을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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