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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작가 Jan 21. 2023

기자 타이틀을 단다는 것의 의미

바보야, 돈이 다는 아니야

2023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만큼 특이한 구조의 매체는 없을 듯싶다.


오프라인 물성을 지닌 콘텐츠를 만들어 내면서 온라인으로도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무 신조는 전혀 아님을 미리 밝힌다.


어쨌든 그러한 까닭에 우리 조직의 콘텐츠 크리에이터 명함에는 두 가지 직책이 박혀 있다. 하나는 에디터, 다른 하나는 기자.


기자와 에디터, 두 가지 업무를 병행하는 일은 고단하다


매달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면서 매일 같이 뉴스를 작성해야 하니, 업무 강도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둘 중 하나만 하는 매체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선후배 할 것 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고강도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도 제법 크다. 책에서는 고퀄리티의 작업물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하고, 또 디자이너와도 긴밀한 협업을 해야 한다. 


온라인이라는 전장은 오프라인과는 또 다르다. 여기서는 퀄리티보다는 조회수가 중요하다. 미디어 업계에서 온라인 뉴스의 조회수는 곧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디 조회수뿐만이랴. 이곳은 무한정의 공간이다. 지면은 콘텐츠를 채울 공간의 제약이라도 있지, 여긴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써도 써도 채워지지 않는다. 계속 빨아들인다. 이 블랙홀에서 이정표를 찍기 위해 인간의 탈을 쓴 뉴스 머신들이 24시간 365일 돌아간다. 설국열차도 이런 설국열차가 없다.


까딱 하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작금의 구조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는 없다.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나름 소중한 우리의 밥줄(?)이니 말이다. 대기업도 중견기업도 중기업도 아닌 소기업, 그중에서도 영세기업에서 개개인의 전투력 저하는 수익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관리자는 머리가 아프다.


최근 우리 조직은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핵심은 오프라인 수익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상황에서 업무 리소스를 어떻게 재배분할 것이냐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오프라인을 조금 더 잘해보자'였고, 결국 기존에 만들던 책을 조금 더 리뉴얼 또는 리브랜딩해 내놓기로 중지가 모였다.


이걸 더 잘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온라인을 놓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온라인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 포털들이 콘텐츠의 창구 역을 해주고 있고, 수익은 조회수에 따라 셰어 해주는 구조다. 온라인의 수익 비중이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전국구의 영역으로, 전국의 수천, 아니 수만 매체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다만 포털들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뉴미디어들에 관심의 지분을 잠식당하고 있기에 기존의 정률화된 전재료 배분에서 실제 링크의 수익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변모하는 추세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돌아오면 우리 조직은 오프라인을 개선 또는 강화하자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오프라인을 강화하자니 온라인에서 퇴출당할까 봐 두렵고, 그렇다고 온라인에 비중을 실자니, 정체 흐름의 오프라인이 더 사장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TFT 포함 여러 회의들이 계속해서 개최(?)되고 있는데, 최근의 회의에서 모 후배가 이런 의견을 당당히 내놓았다. "오프라인에서도 효율성을 제고하고, PD나 편집자를 고용해 유튜브도 해야 합니다. 다만 (돈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현장 취재는 나가지 않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인 의견이니 들어줄 만했지만, 회의가 끝난 뒤 직원들만 모인 자리에서 그 후배가 한 마디 더 보탰다. "며칠에 아무개 님 기자회견 잡혀 있던데 굳이 가야 합니까 선배?"


비교적 평온했던 마음의 물결이 파도가 되어 목구멍의 방파제 위로 치솟았다. "아니, 그럴 거면 뭐 하러 기자 타이틀을 달고 있냐 우리가. 아예 기자 떼고 에디터만 해야지. 책만 만드는 에디터."


이러다 논문 한 편 쓰겄네


우리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에디티스트(에디터 + 저널리스트) 또는 기디터(기자 + 에디터) 매체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바람이 불면서 오프라인만 하던 풍조에서 벗어나 온라인까지 떠안게 되었다. 지금의 뉴미디어가 그러하듯 당시 역시도 시대적 흐름이었다. 


요즘은 오프라인을 하는 매체는 많지 않다. 조중동 등 전통의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를 병행할 뿐, 온라인 베이스의 매체가 다수를 이룬다. 온라인 매체는 종이를 인쇄하지 않아 엉덩이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레드오션에서 서로 살 깎아먹는 경쟁을 피할 수가 없어 채산성이 낮고 그래서 대부분이 영세하다. 다만 이들은 유튜브까지도 확장하여 작금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동기(유튜브 등 뉴미디어)에 살면서 뗀석기(오프라인)와 간석기(온라인) 사용에 여념이 없는 우리이지만, 그래서 청동기 시대의 멸종 위기종으로서 철기로는 나아가지 못하리란 두려움에 늘 시달린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늘 이 지긋지긋한 배고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매년 한 살 한 살씩 먹고 있고, 이 생태계에서 비약적 퀀텀 점프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구성원 중 누구 한둘과 갑자기 이별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꼭 보여줘야 말이가?


그래, 그런 사정 다 안다. 그렇다고 현장을 가지 말자? 후배의 생각 없는 듯 던져온 그 말에 차마 나는 참을성을 잃고 말았다. 이분법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마인드라면 에디터로만 집중해서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에디터와 저널리스트는 판이하게 다르다. 에디터는 좋은 것 중에 더 좋은 것을 골라내는 직업이라고 누가 말했다. 저널리스트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장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그리고 우리가 서있는 필드의 파이가 그 누구도 넉넉하게 나눠 먹지 못할 만큼 초라하고 작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현장에서 그곳의 소리를 전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돈돈 할 거면 나보다 많이 벌어 오고 나서 얘기해!'라는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 바로 앞까지 멈춰 섰지만, 팃낙한 스님이 정수리에서 화를 참으라고 일러 주셔서 비로소 또 다른 불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것까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 장(將) 노릇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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