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중요하지만, 힘들면 개성 표출이라도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란 직업 글쟁이도 그렇고 초심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주제를 잡고 글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도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호한다. 최초의 생각이 가장 좋을 때가 많았다,라고는 말하지만 사실은 즉흥적인 편에 가깝다)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야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자연스럽게 글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범인이요, 범인에게는 그러한 비범한 능력은 다년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뿜어낼 수 있는 역량이다.
글빨이 좀 딸린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추천한다. 일단 제목을 던져라(이 글처럼). 지금 나의 글쓰기도 무작정 제목을 던져놓고 제목으로 풀어내는 잡글에 진배없다.
제목은 곧 주제요, 주제는 뭐를 쓸지 정하는 행위다. 그러면 적어도 갈팡질팡은 안 하게 된다. 석 줄 넉 줄이라도 휘갈길 수 있게 된다. 도착점을 정해 놓았기에, 그 과정에서 비록 길을 헤매더라도 어떻게든 피니시 라인으로 갈 수는 있다. 완주하느냐 낙마하느냐는 쌓였을 때 차이가 크다.
글이라는 단어가 주는 함의의 무게는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는 사람에게는 막중한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여러분이 김훈이나 김영하나 김연수나 박완서가 아닌 이상 전연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러분을 평가하는 것은 타인일 수 있기만 여러분이기도 하다. 자기만족에 이끌려 쓰는 글을 초심 단계에서는 최우선으로 삼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글이 영 어렵다면 자신만의 캐릭터리스틱으로 승부를 걸어 보자. 사람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이요, 그 성향이 글로도 발산된다. 위트 있는 사람들은 위트 있게 끄적여 보면 되고,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들은 그들만의 터치로 글을 풀어내면 된다.
글은 누군가에게 검사받거나 평가받기 위해 일삼는 행위가 아니다. 글의 목적성은 자신을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정돈된 차분함 내지는 카타르시스 내지는 자기 만족감을 얻는 데 있다. 에세이 이상으로 가는 상위 티어의 글에서는 목적성이 더 확고해지겠만, 브런치에서 쓰는 글들이란 게 대다수가 자기 이야기가 아니던가.
당부하건대 작위적으로 쓰지 말자. 그렇게 쓰는 글들은 본인답지 못하다. 자기의 색채가 100% 이상 우러져 나올 가능성 자체를 봉쇄해 버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미건조해질까 봐 걱정돼요. 누가 제 글을 읽을까요." 그 무미건조함에 MSG를 치는 순간, 당신 다움은 증발해 버린다.
정지우 작가는 <사람들은 글쓰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단문의 추종되는 세태를 우려하면서 만연체의 희귀종들이 활약해 주길 응원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캐릭터리스틱이 있고, 그것을 부러 인위적으로 자르거나 억제하거나 통제해 버린다면, 그것이 곧 개성성의 말소로 이어지는 필연의 귀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