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녀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마을공동체미디어를 대신 읽어주는 여자, ‘마대녀’ 임사장입니다!
올해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뉴스레터에서 ‘마대녀’라는 코너를 통해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이 발행하는 <동네신문>, 파주에서 협동조합으로 10년째 지역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파주에서>, 엄마들이 직접 만드는 따뜻한 군포 마을잡지 <토닥토담>을 대신 읽어드렸습니다.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신문, 잡지만 있냐!? 그럴 리가요!
‘공동체 출판’은 특정 지역(로컬)이나 공동체(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출판물을 함께 제작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마을공동체에서 공동체 출판은 주민이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 지식 등을 글로 기록하고 책이라는 형태로 공유하는 활동인데요. 지역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 간 소통과 연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신문은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사로 요약된 소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고, 라디오는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기 때문에 휘발성이 강합니다. 하지만 공동체 출판은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는 서사적 공간을 만들어가는 작업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맥락과 감정을 담아내는 기록이 되는 거죠.
‘책’이라는 매체의 물성이 가진 매력과 가치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만질 때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과 무게감, 페이지를 넘길 때 손가락과 종이가 마찰하면서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 글자와 여백이 만들어내는 심미감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제가 오늘 바쁜 여러분들을 위해 대신 읽어드릴 책 <아파트에서 다정한 이웃을 만나기까지>는 바로 공동체 출판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23년 경기도 공동주택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파주 운정신도시 산내마을 7단지 주민들이 아파트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쓴 에세이를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낯선 신도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만들어간 다양한 관계와 공동체 활동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파주 운정신도시 산내마을 7단지 주민들은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입주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마스크를 쓴 채로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단절감과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고, 아파트 내에서 발생하는 작은 갈등 상황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고, 소통할 기회가 줄어든 만큼 관계는 점점 더 삭막해졌죠. 마치 고립된 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공동체라는 개념은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졌습니다.
“아파트에서 공동체 활동이 가능해?”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되고, 어쩌다 공동체 대표가 되고, 어쩌다 작은도서관 관장이 되고, 어쩌다 아파트 공동체 활동에 뛰어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두 팔 걷어붙인 주민들이 무인 택배보관소를 아지트 삼아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런저런 재미난 작당을 하면서 마음의 거리를 한 뼘씩 좁혀갔습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다정한 이웃으로 만나게 된 주민들은 이름과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을 부르면서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메이플은 파주에서 태어나 파주에서 40년을 살아온 파주 토박이입니다. 그녀에겐 ‘파주 우씨’ 성을 가진 남편이 있습니다. 캐나다 사람인 토니는 대한민국으로 귀화하고 성본 창설을 할 때, 아내와 같은 우씨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토니는 본관을 파주로 정하고 파주 우씨의 시조가 되어 파주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메이플은 파주에서 초중고를 다니고 왕복 4시간 거리의 대학교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파주 사람인 것이 불편한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집 앞에서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데 ‘이번 정류소는 물탱크, 물탱크입니다. This stop is water tank, water tank’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매일 들었던 안내방송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은 웃음이 빵 터졌다. 어떻게 버스 정류소 이름이 물탱크일 수 있냐면서. 그날 이후 남편은 나를 보면서 ‘물탱크’, ‘water tank’라며 놀렸다.”
메이플과 토니는 아파트에서 축제가 열릴 때마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풍선에 바람을 넣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죠!
아파트 공동체 ‘드림커뮤니티’ 대표 헬렌은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막내의 돌봄 선생님을 구하는 일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죠. 돌봄 선생님이 실제 근무 시간은 5시간이지만, 10시간으로 보고해 달라고 요구하는 부당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서 끙끙 앓기도 했습니다.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나를 드림커뮤니티 식구들이 토닥여주고 힘을 내라 위로해 주었다. 게다가 선생님이 못 오시는 날은 아이들을 대신 봐주시겠다고 도움의 손길까지 내밀어주셨다. 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 이웃들인가?! 나의 힘듦은 따뜻한 이웃들 덕분에 마음의 짐이 반이 되었고, 내 몸의 힘듦도 반이 줄었다.”
헬렌은 현재 언어재활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언어재활사로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공동체 활동에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올해 보탬e 담당자로, 강사로 맹활약 중인 뜨개쌤은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전우애 같은 친숙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아파트 온라인 카페에 독서공동체 회원 모집 글을 보고, 공동체의 의미도 모른 채 오직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길 바라면서 시작했던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공동체 활동은 재밌고 좋았으나 외모에 자신 있는 내가 아니라 사진이며 영상으로 자료에 남겨지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다. 소심한 성격이라 제대로 거부하지도 못해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찍어주는 분이 표정이 너무 좋다며 세뇌 아닌 세뇌를 시키는 바람에 자주 찍히며 여기저기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어느 순간부턴 자연스러워졌다. 동네 역사지만 작은 한 페이지에 남겨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찍힌 유튜브 동영상을 아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아들이 막 웃어도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아들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남기게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뜨개쌤은 최근에 파주출판도시 영화마을에 작은 뜨개공방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아파트 작은도서관 관장 호랑은 국공립어린이집에서 10년 이상 근무하고 퇴사한 보육교사입니다. 아들 육아와 자기 계발에 열성적인 그녀는 이미 한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였습니다. 아파트에서 북토크도 열고, 글쓰기 마을강사로 활동하면서 주민들과 가까워졌고 작은도서관 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퇴사한 지 이제 6개월이 되었다. 마을에서 ‘마을강사’에 도전해 본 것이 최근에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다. 아파트 내에 위치한 ‘숲속작은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과 달리 독서실과 연결되어 있어 조용하게 유지돼야 할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 게 어려웠다. ‘혹시나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운 마이 생겨 머뭇거리기도 했다.”
호랑은 당장 아파트 작은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파주시 관내 작은도서관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다른 마을의 작은도서관 운영 사례를 공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고 있어요.
드림커뮤니티는 2023년엔 경기도 지원사업으로 첫 번째 책을 출간했고, 2024년엔 파주시 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 지원센터 지원으로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파주에 사는 이웃인 똑똑도서관 김승수 관장은 첫 번째 책 추천사에 이런 글을 써주셨어요.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고, 부정적인 사람은 한 게 없다.’라는 평상시 좋아하는 말이 있다. 이웃에 사는 드림커뮤니티 사람들을 보면서 떠올렸던 말이기도 하다. 준비된 경험이나 학습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바라는 이상을 좇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실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소 서툴 수는 있으나 그들의 이상과 상상이 참 신선했다. 누군가의 뻔지르르하기만 한, 전혀 현장감 없는 글이나 매뉴얼보다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노라 선언한 그들의 실천 하나하나에 작은 응원을 보탰다. 그리고 그들은 일 년 동안 멋지게 좌충우돌을 경험했다. 아마 이 책이 그 좌충우돌을 통한 성장의 과정과 공동체에서의 실험과 실패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드림커뮤니티의 두 번째 에세이는 ‘성장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공동체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하네요.
이렇게 마대녀 네 번째 소식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2025년에 다시 마대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럴 수 있겠죠? 모두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