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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Jan 13. 2022

외력과 내력에 대하여

feat. 나의 아저씨

"너처럼 어린 애가 어떻게...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그러니까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냐.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거? 다 아무 것도 아냐.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거야. 행복할게."(이선균)

"걘 날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난 걔가 착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이지은)


"난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오나라)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이선균)

처음엔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해 인생이 거칠어진 아이들이 마침내 후지지 않은 어른을 만나 위로 받고, 인생의 내력을 키우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기댈 곳 없이 홀로 살아남느라 내력을 키워온 그 아이가 인생의 내력이 탄탄한 줄로만 알았다가 갑자기 삶이 무너진 어른을 안쓰러워하고, 그 무너진 내력을 추스르도록 전력을 다해 돕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무너지지 않는 기둥이 되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박동훈 역)과 이지은(이지안 역)의 서사에 더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좋아하는 이를 파괴하면서까지 지은 주변을 맴도는 장기용(이광일 역), 한때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출가한 박해준(겸덕 역)을 잊지 못하는 오나라(정희 역), 서로의 약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어하는 권나라(최유라 역)와 송새벽(박기훈 역)의 관계였다. 지질하고 슬픈데 두 손 모아 응원해주고 싶은 자잘한 애통함들. 좋아하는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곤 상처 주는 것밖에 없는 절박한 애정.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이어지는 현실의 생활.

단순히 여자 남자 사이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관계'에 대해 얘기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마니아들이 생겼겠지.  


<나의 아저씨> 방영 뒤 찾아간 곳이 바로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저 철길, 그리고 기찻길주점. 평일 저녁엔 문 여시는지 사장님께 전화를 해야 허탕치지 않는다. 비오는 날 소주 한 잔 하며 골목 앞으로 지나는 기차를 바라볼 수 있는 기찻길 주점. 넘어질 듯 위태로운 용산의 높은 스카이라인이 포위해오는 골목길 한편에 철길이 지나는 좁은 골목이 여전히 최전방을 사수 중이다.

그래도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들처럼.

그래, 아무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기차가 다닌다. 서울에서 이렇게 철로가 가까운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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