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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공 Apr 22. 2024

해피 버스데이 투 미

어느 겨울에 술에 취해 이유 없이 쓴 해피 버스데이 안경.


볕이 유난히 따뜻했던 얼마 전, 팀 막내의 재촉에 바쁜 일을 제쳐두고 나들이를 나갔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파티가 열렸다. 생일 이틀 전이었다. 과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에 초를 붙였고 소원까지 야무지게 빌었다. 양옆엔 막내가 직접 만든 생일 포스터까지 세워졌다. 나중에 공유받은 사진 속 나는, 얼굴이 벌게져 잇몸이 빠지라 웃고 있었다.


학창 시절엔 시험보다 중요한 이벤트가 생일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친구의 생일을 기념해 몰래카메라를 자주 기획했다. 주로 생일을 잊은 척 연기하거나, 생일자 앞에서 싸우는 콘셉트였다.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면서 키득거리는 것이 그날의 낙이었다. 목표는 늘 생일자의 눈물이었는데, 비슷한 연기를 하도 많이 해 실제로 우는 경우는 잘 없었다. 사실 몰래카메라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끝엔 얼굴에 케이크를 묻히고 큰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당시에 부모님은 종종 자신의 생일을 깜빡했다. 생일을 깜빡할 수가 있다고?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게도 빠르게 찾아왔다.


인생엔 생일 말고도 이벤트가 많았다. 생일은 비교적 무뎌졌다. 그렇게 말했더니,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준 K님이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더 챙겨야죠. 본인은 무뎌지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준 짧은 편지에도 이렇게 쓰여 있었다. 좋은 날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 좋다고.


언젠가 카카오톡 생일 알림에 대한 불만 글을 읽은 적 있다. 알림이 뜨면 숙제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게 부담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알림을 핑계로 오랜 인연에 안부를 물어 좋았던 내가 괜히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 글이 한참 마음에 걸려 얼마 전에 내 알림도 껐다. 


그리고 생일은 그제나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지나갔다. 밀린 드라마를 봤고, 집안일을 했다. 이렇게 감흥 없이 생일을 보내는 것이 어른이리라,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렇게 보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아침부터 돌아가며 전화를 해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서로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외우던 시절의 친구들은 기어코 내 생일을 기억해 안부를 물어왔다. 뒤늦게 알게 됐다며 깜짝 선물로 마음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저녁엔 남편과 작은 조각 케이크에 초를 켰다.


이 정도면 넘치게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해피 버스데이 투 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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