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공 Jun 03. 2024

타인의 기억에서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자주 모호했던 날.


(90년대생 한국인이라) 구구단은 잠결에도 욀 수 있을 정도인데, 기억력은 남들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몇 년 전에 깨닫고 말았다. 8년을 만난 전 남친(현 남편)이 “전에 같이 왔던 곳이잖아.”, “전에 같이 먹었던 거잖아.” 하며 꺼내는 이야기들이 자주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의 추억만 까먹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지만, 돌아보면 난 원래 잘 까먹었다.


기억력이 남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탓에, 타인의 기억에서 튀어나오는 낯선 내 모습을 자주 마주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대부분… 별로였다. 여동생의 기억 속에 나는, 말을 안 듣는 막내 남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때렸다. 물론 지금도 부정하고 있지만. 또 엄마의 기억 속에 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건지, 시부모님과 여행을 앞둔 내게 “힘들다고 미운 표정 하지 말고, 퉁퉁대지 말고, 기분 좋게, 응?”과 같은 잔소리를 100번쯤 했다.


특히 '낯선 나'는 남편의 기억에서 자주 발견됐다. 아쉽게도 남편의 기억은 그의 휴대전화 사진첩과도 궤를 같이하는 바람에 부정할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예민해져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던 것도, 그의 앞에서 처음 방귀를 튼 것도, 조리도구를 휘두르며 그를 (때리겠다고) 쫓은 것도 나였다.


최근엔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의 기억에서 예전의 나를 만났다. 우리는 같이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들어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찾았다고 했다. 지난 수업에서 제출한 내 시를 칭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친구의 기억이 꽤 정확하다고 믿게 된 이유는, 그녀는 내가 교수님의 권유로 창작 시 발표를 위해 강단에 나서던 때,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친구가 속이 안 좋다며 손을 주물러 달라고 한 일까지 마치 사진을 찍은 듯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친구의 손을 주무르며 내 발표를 들어야 했다며, 진짜 짜증 났다는 기분까지 공유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가시거리 10m 안팎의 기억이 조금은 선명해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시어로 적을까 고민하며 즐거웠던 것 같기도 했다. 강단에 서서 시를 읊을 땐 부끄럽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뿌듯했던 것 같기도 했다.


창작에 무지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누군가의 기억에서 나는 꽤 멋진 시인이었다. 그 사실이 지금의 내 인생을 바꾸진 않더라도, 한동안 뜨거울 수 있는 힘을 주유했다.


내 기억에 없다고 남의 기억에도 없는 것은 아니니 조금 더 맞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일상을, 기분을 조금 더 자주 메모하겠다고 다짐한다. 내 기억에도 미래의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많이 담아보기로!

작가의 이전글 [노동 일기 #5] 작은 것에서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