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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Dec 11. 2024

어쩌면 행복일지도

출간 소식


쌀쌀했다. 그날의 오사카는.


문득 소설처럼 시작하고 싶어서 적어봤다.

그런데 그날의 오사카가 쌀쌀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행 중이었고, 그 쌀쌀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을 걸었다. 이것저것 눈에 담기 위해 걸었고, 동선을 잘못 잡아서 걸었고, 길을 잘못 들어서 걸었다. 타고난 길치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면서, 발이 모두 사라져서 발목만 남을 것 같을 때쯤 호텔로 돌아갔다.


짐을 놓기 무섭게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엔 야외 대욕장이 있었고, 지친 몸을 녹이기에 최적의 장소일 터였다. 실내 목욕탕에서 샤워를 마친 후 김 서린 유리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목과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미온의 수분을 빠르게 식혔다. 눈앞에는 붉은색의 은은한 불빛 아래로 길이가 10미터쯤 돼 보이는 탕이 있었다. 그 장면이 어찌나 고요한지 수면이 마치 정교한 칼로 잘라놓은 것 같았다. 연기가 나고 있지 않았다면 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발 끝을 밀어 넣었다. 뜨거웠다. 발을 시작으로 차가운 공기에 수축되던 피부가 수면을 지나며 따끔거렸다. 나는 작게 ‘후압 트합’ 기합을 뱉으며 탕 안으로 몸을 앉혔다.


목까지 모두 잠기자 지쳐있던 근육들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나는 잊고 있던 중요한 기억이 떠오른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그 공간이 나에게 무척 완벽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물속은 따뜻하다. 물 밖은 시원하다. 이것은 마치 뒤집을 때마다 표면의 시원함이 유지되는 이불처럼 완전무결한 경험이었다. 눈앞에 오사카의 고요한 야경이 펼쳐져있다. 별 빛 하나 없는 하늘이었지만 그 조차 누군가 나를 위해 의도한 듯 맘에 꼭 찼다. 별안간 피어난 충만함을, 그저 만끽했다. 우주와 하나가 되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유리문이 열렸다. 두 남성이 탕으로 들어왔다. 대화의 윤곽으로 보건대 그들은 한국인이었고, 한 명이 선배, 다른 이는 후배인 듯했다. 둘은 이미 나누던 주제가 있었는지 "그러니까… 이게 쉽지가 않지"라며 말을 이었다. 탕 안에 나도 있다는 걸 몰랐던 건지, 외국인이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들어도 상관없을 거라고 여긴 탓인지, 둘은 그 조용한 공간에서 참 오랫동안 조잘조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오가는 말들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후배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다. 아직 그의 삶에는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 집 문제만 해결하면, 아이만 좀 더 크면, 차만 좀 더 좋은 걸로 바꾸면, 행복할 것 같단다. 그가 가진 고민은 알고 있던 것이고 공감할 수 있는 종류였다.


그런데 선배의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후배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한, 비로소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힘들게 다 이뤘지만 몰라주는 가족 때문에 서운하고, 잠에 들기 전 어쩐지 외롭고, 달려온 만큼의 탄성을 가진 일들은 기다려주지 않아서 그 압박은 더 커지고, 그렇게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했다. 탕이 주는 노곤함 때문인지 그들은 숨을 길게 뽑으며 대화를 이었다. 나른한 푸념처럼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토론이기도 했다.


탕에서 나왔다. 객실로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작은 불안이 스쳐갔다. 불편감이기도 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공기만으로도 우주를 품은 듯 행복을 느끼고 있던 나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더 나은 삶을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작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그리고 이 변화는 꽤 흥미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충만했던 순간이 나와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행복의 기준이 있었고, 내 것과 달랐다. 하지만 왜 나는 그들의 기준에 영향을 받게 된 걸까.


늘 이런 의문이 있었다. 내 행복을 내 입맛에 맞게 정하기 어려운 느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이런 기준들로부터 자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의문들을 붙잡아 기록했고, 그 답을 찾아 자료를 뒤졌다. 그러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 메모는 글이 되었고, 글은 책이 되었다. (응...?)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하셨나요...? ;;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 운 좋게 출간을 했네요.


책의 이름은 <어쩌면 행복일지도>예요.

제목에 드러난 대로 이번 책의 키워드는 '행복'인데요. 행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살짝 비켜서서 째려보는 이야기예요. 


생각해 보면 이 행복이란 게 참 교묘해요. 잡힐 것처럼 주변 어딘가에 얼쩡거리는데, 막상 휘젓고 손을 펴보면 없기 때문이죠.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추려 애써봐도, 곧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게 돼요. (위의 대화에 등장하는 선배처럼) 모든 걸 이룬 듯 보이는 사람조차 행복을 잡지 못했다고 고백할 정도니까요. 이쯤 되면 이 행복놈(?)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단 말이죠? 잡힐 듯 느낌만 주다가 결국 도망가 버리면서 희망고문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미꾸라지 같은 행복을 좇고 있을까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속삭이는 사회의 함정에 빠진 것인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면, 나만 행복과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면, 이 책이 작은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넘어, 더 자유롭고 안온한 일상을 찾아보아요. :)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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