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9가지 비밀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체구가 작고 힘도 약하다. 그럼에도 현존 최고의 지배 집단이 되었다. 그 비결은 이 작은 육체에서도 더 작은 두개골 속에 숨어있다. 바로 뇌다.
뇌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고 어제의 일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5분 뒤는 물론, 5년 후의 미래도 계획한다. 한 번 가본 곳은 직접 가지 않고도 도달할 수 있다. 그뿐인가. 때에 따라서는 가보지 않은 곳까지도 거닐 수 있다. 이처럼 뇌에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순간 이동과 더불어 시간 여행까지 가능한 유일무이 세계. 아직도 그 비밀이 다 풀리지 않은,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밀실이다.
뇌는 몸속의 다른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내 것이지만 직접 볼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시신경을 통해 전달된 이 선과 면들의 나열을 글자라는 의미 있는 단위로 묶어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엄마나 직장 상사에게 '장식품' 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굉장한 성능을 가진 하드웨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토록 특별한 뇌에 대해 밝혀진 9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이마와 머리카락 아래에서 고요하게, 내 모든 일상을 관리하는 존재에 대해 알아보자.
1. 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뇌를 사용하여 놀라운 상상을 하거나 상상 이상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뇌는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둡고 음습한 공간에 존재한다. 그 자체로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2. '뇌 세상'은 모스 부호처럼 단순하다.
영화 <매트릭스> 네오는 각성을 하면서 자신이 존재하던 공간이 아주 단순한 디지털 신호 덩어리라는 걸 보게 된다. 뇌는 이 같은 매트릭스 세상이기도 하다. 단순한 전기 자극의 흐름으로만 작동한다. 하지만 중립적인 정보로부터 새롭고 입체적이며 감각적인 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푸른 하늘 너머의 칠흑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 있다.
3. 뇌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현재 당신의 뇌는 약 1,350㎤의 크기다. 12,000년 전(1,500㎤)과 비교했을 때 약 10% 작아졌다. 테니스 공 정도의 용량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효율성의 증가 덕이다. 마치 노트북이나 휴대폰의 cpu와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크기, 심지어 더 작은 크기의 반도체가 더 많은 용량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세대는 더 콤팩트하고 가벼운 뇌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4. 뇌의 80%는 물이다.
정확히는 75-80%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는 지방과 단백질이다. 지구의 표면도 약 75%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괜히 신기하다.
5. 뇌는 배터리를 많이 쓴다.
무게는 몸 전체의 2%의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고 있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배고플 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6. 뇌의 저장 용량은 현존 최고 스펙
뇌에는 약 200 엑사바이트(exabytes) 수준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어마 무시한 용량이냐 하면, 1 엑사바이트는 10억 기가바이트다. 우리가 구입하는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이 256 기가바이트이고, 노트북이 그의 4배인 1,024 기가바이트다. 계산해 보면, 200 엑사바이트인 뇌에는 약 2억 대의 노트북에 해당하는 양을 저장할 수 있다. 다른 비교로, 이는 오늘날 전 세계의 디지털 콘테츠를 합친 양에 이른다. (그런데 왜 내 것은 이리도 소박하지…. 소중한데 소소해….)
7. 뇌에는 860억 개의 뉴런이 있다.
각각의 뉴런(신경 세포)은 약 100만 개의 스냅스를 통해 다른 뉴런과 연결돼 있다. 은하에 있는 별들의 수만큼 많은 다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각 뉴런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도 1초에 1~5회 정도 전기신호를 보낸다. 흥분하면 50~100, 심지어 500회까지 보낼 때도 있다. 상상해 보라. 은하계 수백억 개의 별들이 각기 초당 수십 번의 전기를 주고받는 장관을.
8. 눈은 1초당 1000억 개의 신호를 뇌로 보낸다.
무언가를 ‘보는 것’은 시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뿐만 아니라, 뇌가 받는 신호를 어떻게 분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0.2초가 걸린다. 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0.2초 후의 세상에서 평생을 보내는 셈이다.
9. 마지막으로―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멋진 석양, 우연히 올려다본 가을 하늘, 가슴을 뻥 뚫는 수평선. 우리에게 감격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그것들은 열린 창문으로 흐르듯 우리의 눈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데 망막에 다다르는 빛의 입자는 무색이다. 마치 고막을 울리는 소리의 파동이 사실 조용하고, 향기의 분자들이 냄새를 갖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고, 무중력 상태이며, 우주를 여행하는 아원자 입자일 뿐이다.
즉, 삶의 풍요로움은 모두 이 작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라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응원이 아니다. 과학이고, 사실이다.
무색의 입자, 조용한 파동, 무향의 분자,
빈 공간을 들고 오는 세상.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으로 나를 채울 것인가.
* 참고문헌
Bryson, B. (2019). The Body: A Guide for Occupants. Random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