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철학 비판의 서문.

시대의 전락인가 전락의 시대인가, 나는 이것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by 아스파라거스

1929년, 대공황과 함께 등장한 큰 정부에 대한 지향은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였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제철학(주의)이라는 것이 그저 돌고 도는 유행이라는 것을, 파도와 같이 넘실대는 흐름이라는 것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지난 100여 년의 경제사를 한눈에 되짚어 볼 수 있기에 영원한 건 절대 없음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모든 면에서 전 세계를 집어삼켰고, 브레튼우즈는 체제 이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때를 미국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유일한)공장이었고, 패권국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동시에 금본위제→브레튼우즈 체제→닉슨 쇼크(금본위제 포기) 과정은, 미국의 세계적 양아치 행위의 끝판왕이라고 본다.


1970년 대, 당최 모를 현상,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케인즈주의는 위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형태의 고전주의 경제철학(신고전파 또는 통화주의)이 왕좌에 섰다. 시장은 시장 그 자체의 합리성에 기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다음 시대를 위한 거대한 밑밥이고 떡밥이었다.


1980년 대, 저 유명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시대가 도래했다.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등장했으며, 시장과 경제라는 화두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어떤 것도 경제부흥을 위한 수단(도구) 이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자원화하여, 이내 소모적이고 일회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시대의 전락(轉落)이라고 생각한다. 전락의 기원이 신자유주의가 아닐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것은 전락의 완성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국 중심의 역사이고 사고이다.




2차 대전 이전까지 고립주의를 완강하게 고집해 왔던 미국의 경제철학사는, 앞서 언급한 브레튼우즈 체제와 함께 화폐를 넘어 역사의 기축이 되었다. 모든 것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것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전후 복구와 독재에 맞서느라 정신없던 우리나라에는 그 바람이 조금 늦게 불어왔다. 신자유주의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내가, 나라 밖을 한 번도 구경한 적 없었던 내가, 미국발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맞은 것은 1997년 말, IMF(일명: IMF 시기, IMF 때, IMF 구제금융, IMF 위기 등... 다양했던 이름이 우리의 정신없음을 나타낸다고 본다)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미 GATT에서 WTO와 FTA로 세계경제에 강한 동조화sync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던 미국은, 외환위기를 핑계로 한국 경제의 완전한 해체와 재구성에 나섰다.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말이 좋아 국제통화기금이지, 미국이 펼치는 현대식 제국주의의 첨병이다.)는 돈의 대가로 많은 변화(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를 요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융시장의 개방과 재벌 개혁,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따지고 보자면, 전지구적으로 미국의 간섭 혹은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는 없었다. 심지어 소련과 중국 조차도 경쟁자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미국을 의식하고 있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넘어, 구제금융을 계기로, 우리는 아마도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멀지만 시스템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고대사도 없고, 중세사도 없는 나라이다. 하지만 탄탄한 현대사를 가졌다. 모든 것을 단계적으로 밟아왔다. 기승전이 있었으며, 인과가 있었고, 테제와 안티테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크지 않았을지언정, 반성과 자성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신자유주의는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근간인 사회에서 경제철학은 당연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이식된 경제철학으로 인한 면역거부반응은 사회 곳곳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났다. 가끔은 그 병증의 원인이 미처 그것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만성적으로 발생했다. 일부의 병증은 세대를 넘어 발생하기도 해, 더 이상 그 원인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고 지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그것의 원인을 따져보고자(학습해 보고자) 한다. 얼마에 걸쳐, 얼마나 구체적 일지 모르겠으나 얼마만큼이건 한번 시도해 보려 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띄엄띄엄 당선된 어느 POTUS 때문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기는 하지만... AI와 기후위기 등에 맞물린 톱니는 분명히 힘이 실려 돌고 있다. 그 움직임에 미력을 보태고자 하는 마음의 행동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