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본문.
계급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나 계급(신분을 포함하여)은 존재했다. 개인 간 혹은 조직 간에는, 물리력에 의한 것이건, 정치력에 의한 것이건, 경제력에 의한 것이건 간에, 상대적인 높고 낮음은 늘 그렇게 있어왔다. 이는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넘어선다. 반드시 그 한 단면에는 분명히 계급 체계가 존재한다.
현대에 와서는 계급 체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것을 깨부수려는 일부의 노력도 있기는 하다. 수고로움으로써 계급의 상징은 떼어낼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실질을 없애지는 못했다.
계급 체계는 대체로 아래에서 위로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분포를 보인다(항아리와 같은 형태도 존재하지만, 결국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나눈다면 피라미드가 된다). 각 계급은 불연속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며, 계급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연속적인 계급이 또 존재한다.
계급은 아래에 대해서는 경화hardening를, 위에 대해서는 연화softening를 지향한다. 얼핏 성립되지 않을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매우 자연스럽다. 누구나 상승을 바란다.
진동
명확하게 불연속적인 것으로 정의되어, 서로 대치하는 계급의 경화와 연화 사이 경계면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진동이다. 이동이 아닌 진동이라 말하는 이유는 아래에서 위로의 이동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몰락하기도 한다. 진동은 일종의 계면활성운동으로써, 불연속적인 경계를 연속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진동은 계급사회의 붕괴가 아닌 유지에 오히려 더 큰 기여를 한다. 계층 내부의 압력이 오를 때에 경계면에 가장 근접한 일부를 흡수해 버리는 것만으로도 계층 전체의 압력을 충분히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면에서의 진동은 체계 유지를 위한 효율적인 완충 장치이다.
힘을 가진 사람 또는 조직은 경화와 연화의 대립을 고의적으로 설계해 두기도 한다. 계급 내부의 경쟁을 조장하고 진동을 통한 계급 간의 통로를 열어둠으로써 계급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교육
최상위 지배 계급은 교육을 통해 계급 내 경쟁을 조장하고, 계급 간 이동을 원하는 수준으로 통제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공동체의 번영과 차별의 금지, 지속가능한 조화로운 사회 체제 구축의 수단이 교육이기도 하다.
지배 계급의 교육 목표는 매우 단순하다. 지배의 정당성, 효율성, 그리고 안정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지배를 위함이다. 하지만 피지배 계급에게 있어 지배 체계는 정당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때문에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학교라는 교육 기관이다. 특히 초등교육은 주입의 효과와 효율면에서 탁월할 수밖에 없다. 목표 달성을 위해 왜곡되고 날조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한다면 그 수용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제한된 일부를 대상으로 한다면, 보통은 경쟁적이고 자발적으로 피교육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양상은 프로이센의 교육 체계가 도입된 근대 이후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도드라진다. 인도-영국, 알제리-프랑스, 조선-일본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지배 계급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자랑스럽게도 신흥무관학교와 같이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드물게는 지배 계급에 의해 설립된 학교가 정반대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우리의 시대
일본 제국주의에 확산된 초등교육은 우리의 공교육 체계로 자리 잡는다. 일본의 이름이(이름만) 빠진 자리는 미국이 채웠다. 보통학교가 국민학교로 그리고 다시 초등학교로 바뀌었듯이, 우리 초등교육의 내용은 시대(이념)의 흐름에 따라 다변해 왔다. 우리는 냉전의 시대를 겪었고, 독재의 시대를 겪었고, 성장의 시대를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자유주의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