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직 못다 한 말들.
변화
신자유주의의 교육 체계 변화는 이전과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전(제국주의, 냉전, 독재 등)의 시대들이 교육 체계는 그대로 두고 내용의 변화를 주었다면, 신자유주의는 교육 체계 자체에 변화를 주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덮치면서 발생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에 의해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케인즈주의가 원인이며, 그것으로는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변화의 바람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의 간섭을 본질적으로 싫어한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믿고 따른다(물론 정부의 관리 감독 하에 있기는 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을 공공재가 아닌 수요-공급에 따른 사적 서비스로 정의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공교육(특히나 초등교육)은 체계를 갖춘 이후 늘 지배 계급(혹은 계층)의 기득권 강화를 위한 전략적 도구였다. 늘 국가주도의 공공재로써, 국민의 정체성 통제하고 생산성(전투교육, 산업교육)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수요가 있어 공급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 공급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20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오던 체계를 완전히 뒤바꾸었다.
이들에게 교육 체계는 완전히 불필요한 것일까? 그들이 신봉하는 시장과 자본에 대한 교육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수요-공급에 따른 사적 서비스로 정의하였으니, 수요를 만들어내면 사적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전 200년, 아니 그것을 넘어 대부분의 역사에서 없었던, 일반의 교육에 대한 수요를 어떻게 만들어낸다는 것일까?
그들은 시장주의자들 답게 그 답을 시장에서 찾았다. 그동안 국가(또는 그에 상응하는 조직)는 정복과 개척의 시대, 산업화 시대, 대량 생산의 시대에 맞는 인재들을 표준화하여 양성해 왔다. 그것은 국가의 당연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인력 양성의 역할을 시장에 맡긴 것이다. 필요한 인력의 종류와 양과 질에 대한 모든 판단은 이제부터 시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반작용
미리 말하지만 반작용이 나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용에 따른 것reaction일 뿐이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으며, 혼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반작용에 대해서는 우리의 사정에 제한해 다루고자 한다.
교육의 서비스화는 시기적으로 분명히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은 급격하게 다변했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는 마침 정보화와 함께 찾아왔다. 시장은 다양한 종류의 인재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공교육만으로는 그 속도와 다양성에 발맞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변화된 고용시장의 수요에 맞는 공급을 위한 재교육은 분명히 필요해 보였다.
다만 고용 시장의 변화가 일으킨 연쇄적 반작용들의 여파는 시장에 그치지 않았다. 정보화와 글로벌화는 더 전문적인 인재들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대학의 교육체계가 달라졌으며 서열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또 입시 시장에 큰 변화(사교육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공교육의 붕괴)를 불러일으켰다. 그 끝은 초・중 교육 현장을 넘어 유아 교육(영어 유치원 등)까지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본 위에서 이루어졌다. 자본 위의 교육이란 단순히 가진 자들을 위한 교육 체계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반작용이 수반한 부작용side effect이다.
체제 강화를 위해 보편화된 공교육 체계가 수립된 이후, 늘 발생했던 현상 중 하나는 교육받은 자들의 체제를 향한 저항이다. 교육의 역설이다. 그리고 이 역설은 근대 이후 사회를 진전시킨 큰 동력이었다. 프랑스혁명은 교육을 통해 비판 의식을 갖게 된 부르주아지들의 저항이었고, 조선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교육받은 우리의 학생들이 주도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시 비판의식을 가졌던 양심들의 행동의 결과였다.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중국의 천안문 항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성inertia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매 세대는 전 세대보다 더 똑똑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공감한다. 유시민이 말한 그 똑똑함은 절대 기성세대의 눈에 드는 똑똑함이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전염병처럼, 들불처럼 확산된 것이 딱 30년쯤 되었다. 한 세대가 된 것이다. 단순한 공교로움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MZ세대gen z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태어났다. 그들은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 하에서, 자본 위에서, 교육받고 성장해 왔다. 얼핏, 그들은 세상을 멀리한 채로, 파편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우리는 으레 그것이 그들의 특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AI를 발전시켜 세상을 이끌고 있는 것 또한 이들이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똑똑한 이 세대가, 지금 관성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관성이란 멈춰 있던 것은 멈춰 있으려 하고, 움직이던 것은 움직이려 하는 힘이다. 나는 이들이 세상을 바꿔오던 동력을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 교육의 역설, 그 훌륭하고 멋진 모멘텀을 이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