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타노스와 스카이넷
칼 포퍼Karl Popper
역사주의historicism라는 것이 있다. 역사에는 일정한 법칙laws, 경향trend, 목적purpose이 있으며, 그 법칙을 발견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마치 타노스(마블)가 말했던 필연성inevitability 같은 것이다. 타노스를 제외하면 변증법의 헤겔Hegel과 자본론의 맑스Marx가 역사주의자라고 한다.
나는 역사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단순한 인과cause and effect를 넘어서는 불가피성이나 필연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포퍼의 생각들을 좋아한다. 포퍼는 철저한 반(反) 역사주의자이며, 권위적이지도 전체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적어도 그에 생각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포퍼는 역사란 예측 불가능한 인간 행위의 결과라고 말한다. 비선형적(벡터vector가 아니라는 말)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행위란, 지극히 자유롭고 비판적인 개인들의, 지식 추구 행위를 말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냐 하면, 모든 개인은 구속도 제한도 차별도 없이 자유롭게 지식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것들의 상호 작용과 적층의 흔적이 바로 역사라는 뜻이다. 개인과 그 행위의 적층의 단면이 바로 역사라니. 소크라테스를 제외하고 누가 개인에 대해 이렇게 아름답게 평가한 적이 있나 싶다.
게다가 포퍼는 개인의 그 행위는 안전하게 보장되고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역사주의자들과 다른 세계관 바로 열린 사회open society이다. 그리고 이 열린 사회의 방점은 개인들이 만들어낸 지식은 잠정적인 것(언제든 반증가능한 것이기 때문에)이며, 동시에 결과물이자 변수라고 말했다. 발전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어두면서, 불필요한 예측 가능성은 차단해 버렸다. 누구도 개인과 그들의 집합인 사회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내가 마르고 닳도록 씹어대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시장의 논리를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면에서 포퍼의 생각과 대립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비판에도 닫혀 있으며, 개인을 사회 발전의 변수가 아닌 시장의 변수로 취급한다. 신자유주의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던 숭고한 개인의 지위는 없다.
둘 다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그 개념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포퍼는 지식의 추구(생산과 비판)를 통한 세계관의 확장을 위한 자유였지만,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가격으로 귀결되는 닫힌 자유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미 수차례 그것이 틀렸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고, 행동경제학이 고전경제학과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음에도 자신들에게 주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AI-포퍼-신자유주의
AI의 발전 방향과 그 속도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 하지만 나는 AI야 말로 포퍼가 말하는 개인의 지극히 자유로운 비판을 완성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모든 개인을 위한 열린 사회의 개시였다면, AI는 모든 개인을 포퍼가 꿈꾸던 개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AI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했다. 반면, 지금의 AI는 대화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수정을 반복하며,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의 점진성에 엄청난 가속을 더했다. AI가 우리의 틀릴 수 있는 자유를 무한에 가깝게 보장해 주며, 유례없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결과를 교정하고 보정해 준다. 나는 이런 현실에 가끔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인터넷이 열린 사회를 위한 공공재의 성격이 강했다면, AI는 사유재private property 성격이, 아니 확실한 사유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식 자본 논리에 따라 성장하고 있다.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너무 많은 비용과 제한된 리소스에 대한 독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는 AI 시대 우리의 적은 스카이넷(터미네이터)이 아니라, 그것의 소유자possessor들이라고 생각한다. 닫힌 사회를 추구하는 우리의 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