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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08. 2018

문명이 사라진 시대

3-1일

아주아주 가끔 다큐멘터리를 보곤 한다. 사실 매일 자극적인 스토리와 영상에 노출되는 요즘은 다큐멘터리처럼 잔잔한 저자극 영상을 볼 때면 졸음이 쏟아져서 집중을 못할 때가 많은데 그 중에서 너무 인상적이어서 뇌리에 박혀있는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영원한 봉인'이라는 다큐멘터리다. 오랫만에 다시 보고 싶어 서비스되고 있는 곳이 있을까 해서 왓챠플레이 등 현재 결제해서 사용하는 vod 사이트를 찾아봤는데 믿었던 넷플릭스 마저도 서비스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담아 글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봉인은 2010년에 제작된 핀란드의 방사능 폐기물 보관장소인 '온칼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핀란드는 위험한 방사능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를 위해 10년동안 지질연구를 했고 18억년 동안 안정성이 입증된 지층에 5km에 달하는 깊고 깊은 굴을 팠다. 그리고 그 곳에 방사능 폐기물을 담아 입구를 콘크리트로 막아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온칼로', 핀란드어로 은폐장소라는 의미가 담긴 곳이다.

(온칼로가 궁금하다면 https://namu.wiki/w/%EC%98%A8%EC%B9%BC%EB%A1%9C)


이 다큐멘터리가 인상깊었던 이유가 단지 방사능 폐기물에 대한 위험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줘서 뭐 이런 건 아니었고 이렇게 밀봉해서 땅속 깊은 곳에 밀봉시켜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후세인류의 침입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가 아주 먼 옛날의 이집트 문명을 연구하고 파헤쳐 피라미드를 찾아낸 것처럼 언젠가 먼 미래의 인류가 이곳을 열어보는 날이 왔을 때를 대비해 이곳이 위험지역이며 절대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입구에 설치 했는데 이 부분에서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이 바로 문명이 사라진 시대까지도 생각해서 경고문구를 설치했다는 점이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높았던 경제적 호황기에 태어나 늘어나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나는 그것이 사라진 시대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언어는 물론이고 교육, 자본, 예술, 기술, 정보 등 나를 둘러싼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고 일부의 발전은 지켜보기도 했으니 나에게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는 건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온카로는 문명이 사라진 시대까지도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현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방사능 폐기물의 위험성이 사라지는데에는 현재 인류의 역사를 한참을 뛰어넘어 최소 10만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최소 10만년... 고작 32년을 살아온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온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10만 년 후까지도 내다봐야했다. 10만 년이란 시간은 자그마치 현재의 인류 역사의 10배에 달하는 시간인데 말이다.


나는 지금의 문명이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보기는 커녕 당연하다는 듯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후대에도 이어질 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1만 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인류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중에는 사라진 고대왕국이나 문명도 있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0만 년의 시간동안 지금의 문명이 사라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인데도 놀라웠다. 온칼로는 문명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이 지구상에 인류 자체가 사라지고 다른 지성을 갖춘 생명체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상황까지도 고려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경고를 하고 있는데 UN의 공용어와 상용문자를 이용한 언어적 표기, 그림, 사이렌, 비디오, 천체달력에 주기율표까지 지금 시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경고를 하고 있다. 자갈과 화강암을 이용하고 콘크리트로 입구를 막아 진입이 어렵게 만든 건 덤이다.


신기했다. 진입을 막기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경고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나 역시도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강구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이 글을 쓰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 찾아본 온칼로의 정보 중 핀란드의 법률에 따라 정보를 수천 세대에 걸친 후손에게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쓰고 나니 더 보고 싶은 욕구만 셈솟는데 이걸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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