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우리는 늘 지금의 인연을 평생, 영원히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오래도록 이어지는 인연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작년에 tvN에서 방영했던 이민기, 정소민 주연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스토리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정소민이 맡은 윤지호 역이 시나리오 작가라서 그런지 책을 인용한 구절이 많은 점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인용구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이 한 구절에 흥미가 생겨 산문집 역시 사서 읽었는데 이 문장은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의 일부분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이유는 지금 하는 이 대화가 마지막이 되어 유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의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에 '응 그래'라고 답했던 할아버지의 말이 마지막이 되어 나에게는 유언이 된 것처럼.
그러고 얼마지 않아 자주 가는 동네 책방에 갔다가 '머무르는 말들'이라는 독립출판 서적을 샀다. 이 책은 저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말을 엮어 그림과 함께 만든 책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다른 누군가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책으로 엮어져 그 책을 읽은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도 씨앗을 뿌린다.
오늘 나의 입에서 태어난 말도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니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말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툭 내뱉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진심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나의 모토가 됐다.
나의 말은 누구의 가슴으로 가서 어떤 형태의 싹을 틔우며 살아남아있을까. 그 말은 무엇일까. 이왕이면 그 사람의 마음에 살아남아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적어도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머무르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