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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원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

by 봄이


10월의 정원은 이미 깊은 가을이다.

여름의 무성함은 잦아들고, 그 많던 꽃과 나무, 채소와 풀들이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한풀 꺾인 듯 고개를 숙인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한때 정원의 주인이었던 장미는 젖은 꽃잎을 흩날리며 사라지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한 송이가 작은 심지처럼 꺼져가는 계절을 지탱하고 있다.

꽃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운을 잃었다.
여름 내내 정원을 가득 채우던 선명한 빛깔은 이제 빗물에 번져,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끝내 지지 않고 버티는 작은 꽃송이들이 있다. 마지막 꽃잎을 꼭 움켜쥔 채,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생을 다 쓰려는 듯 안간힘을 쓴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 앞에서,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뒷가든의 채소들도 계절을 거슬러 버티려 하지만, 그들 또한 조용히 이별을 준비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키워낸 부추는 희고 가느다란 꽃대를 올려 바람에 흔들리고,
쪽파는 푸른 줄기 위에 누런 껍질을 덧입으며 늙어간다.
상추는 더 이상 잎을 내어주지 않고 꽃대를 세워 씨앗을 품으려 한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가득 머금던 토마토는 붉게 물드는 일을 멈추고,
푸른빛 그대로 젖은 바람 속에 멈춰 서 있다.
그 앞에 서면 비 냄새와 풀내음, 약간은 쓴 듯한 흙의 향기가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빗방울에 젖은 정원 한가운데 서서,

나는 한 계절을 보내는 아쉬움 속에서도 배운다.

끝내 흙이 될지라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꽃과 나무, 그리고 작은 채소들이 남겨주는 가을의 가르침이며,

다시 찾아올 봄을 위한 조용한 약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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