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빛나 Dec 25. 2019

코끼리는 우는 데 재주가 있다

뒷집에는 코끼리가 산다. 볼링   개가 허공을 떠돌았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볼링 핀은 연습 단장의  손을 번갈아가며 날아다녔다. 지루하다고 생각했지. 매일같이 보는 광경이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에 인공 털이 쓸렸다. 폭신하고 윤기가 없는  따끔하기도 했다. 볼링 핀이 손에 닿기 직전.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안았다. 나는 사람이지만 동물. 아니, 사람이면서 동물. 서커스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남았다. 볼링 핀은 시계 초침처럼  위를 떠돌아다녔다. 코끼리가 산다. 뒷집이 옆집이기도 하는  캠프 안에서는 아침 햇살처럼 비명이 울려펴진다. 볼링 핀에 집중하면서  편으로 뒷집에 사는 코끼리에게 눈을 돌린다. 녹이  꼬챙이가 코끼리의 발목에 박혀 있었다. 비명이 들렸다. 볼링 핀은 계속해서 돌아갔다.

 

  톨의 각오도 없이 태어난 것들이 오는 . 나의 각오가 아니라, 부모의 각오가.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구름처럼, 흘렀다 사라진다.  번의 서커스단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 연습 단장의 소리가 귓바퀴에 엉겨붙는다. 각오를 하란 말이다. 사랑 받을 각오를 하란 말이다. 헤진 천으로 감싸진 나를 발견한 서커스 단장에게 감사를, 동시에 원망을. 채찍이 허벅지에 엉겨붙는다. 가시가 없지만 살갗을 파고드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린다. 볼링 핀은 여전히 허공을 굴러다닌다. 뒷집에서는 비명이 빗소리처럼 타닥거렸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옆집에는 늙은 사자가 살았다. 고개를 흔들 때마다 푸석한 갈퀴가 부스러질  같았지. 팔뚝이 얼얼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볼링 핀을 돌리지 않으면 나의 생도 없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다. 새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눈치를 살핀다. 말을 해서는  됐기에 눈알을 굴리는  도가 텄다.   위에서 기계처럼 돌아가는 볼링  사이로 코끼리의 눈이 보인다. 연습 단장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꾸벅거린다. 시선이 바쁘다. 연습 단장의 흐트러진 모습과 코끼리의 비명이 정신을 흔든다. 볼링 핀이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상체를 숙이자 인공 털이 느티나무처럼 흔들린다. 시선은 그대로 코끼리에게. 연습 단장의 졸음을 살핀다. 피로가 발끝으로 떨어진다. 무얼 하든 그러렴, 그러렴. 그러나 사랑 받을 각오는 하렴. 혀끝이 간질거린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사이사이에 작은 돌멩이가 자리를 잡는다. 철장 앞에 선다. 푸르게 녹이  철장 사이로 축축한 눈이 보였다. 코끼리와 눈을 맞춘다. 소리 대신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다. 너는 괜찮을 거다. 잠기지 않은 자물쇠를 푼다. 코끼리는 운다. 그러렴, 그러렴. 연습 단장의 피로한 마음이  속을 채운다.



 뒷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코끼리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아직 어린데도 저렇게 세상을 흔든다. 뒷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뒷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명의 사람들이 메아리처럼 비명을 부른다. 연습 단장은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주름진 눈가에 피로가 쌓인다. 나는 볼링 핀을 주워든다. 시계 초침을 돌린다.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른다. 불이  것처럼 연습 단장은 소리를 지른다. 코끼리가 탈출했다! 피난이 인공  사이사이에 이처럼 파고든다. 코끼리가 비명을 지른다! 사자가 울고 사슴영양이 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를 하고 볼링 핀을 돌린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코끼리가 걷는다. 코로 물을 뿜거나 쇠꼬챙이에 찔리지 않고 걷는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있는 힘껏 입꼬리를 끌어내린다. 사랑 받을 각오가 필요하다.



 내게 영원이 있다면 저글링.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까맣게 몸을  칠했다가, 수성 마카로 몸에 문양을 그려 넣었다가, 하면서 볼링 핀을 돌린다. 코끼리는 계속해서 걷는다.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멈추지 않는  느낀다. 코끼리는 어디로 갈까. 비명을 지르는 용기를  코끼리는 어디로든   있다. 땅을 바라본다. 자글한 돌멩이가 벌겋게 젖어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볼링 핀이 허공을 떠돌았다. 지체없이 가야  길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다. 나는 어디로..... 볼링 핀이  끝에서 미끄러진다. 투박한 소리를 내며 땅끝에서 동동거린다.  순간 연습 단장과 눈이 마주쳤지. 내가 제대로 말을   있는 인간이었다면 물어봤을 텐데. 연습 단장의 눈에는 피로가 자글하게 몰려 있다. 인생이란, 하고.



 서커스 단원들이 어린 코끼리를 따라간다. 나는 코끼리의 걸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작년에 죽은 치타보다 빠르게 달렸으면 했다. 사랑 받을 각오가 없어도 되는 곳으로 떠났으면 했다. 바람이 분다. 서커스장 처마의 하얀 줄무늬가 얼룩말처럼 달린다. 인공 털이 스산하다. 허벅지가 얼얼하다. 비명이 끝났다. 나는 더이상 볼링 핀을 돌리지 않는다. 저글링은 끝났다. 뒷집의 비명 역시. 새벽이 귓가를 돌아다닌다. 모두가 떠난 서커스장은 고요하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다시 볼링 핀을 집어든다. 시계 초침처럼 볼링 핀이 일정하게 돌아간다. 사랑 받을 각오, 그것만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코끼리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라톤은 굳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